[아침을 열면서] 길찾기에도 정치철학적 해법이 필요하다
[아침을 열면서] 길찾기에도 정치철학적 해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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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 앱’은 우리 일상에 가장 깊숙이 파고든 위치기반서비스다. 방향 감각 제로인 길치부터 수십 년 운전경력의 베테랑 택시기사님까지 ‘내비만 찍으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갈 수 있고, 구글맵 하나만 있으면 홍콩 뒷골목이나 뉴욕 맨해튼거리도 두렵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이 17년째 쌓아온 내비게이션 자료를 활용한 딥러닝 기반 알고리즘을 선보였다. SKT 티맵을 지금까지 1천660만 명이나 설치했다니 이용자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알고리즘의 특성상 추천해주는 경로가 믿음직하다. 이에 뒤질세라 카카오는 ‘카카오택시’와 ‘카카오대리’를 통해 카카오맵을 설치한 일반 이용자들의 통행이 적은 새벽과 심야시간대까지 차량통행정보를 충분히 확보해서 24시간 최적의 길 찾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국내 IT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민들 입장에서는 즐겁기만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예를 들어 현재 도로 위에 있는 모든 운전자가 동시에 길찾기를 요청하면 SKT나 카카오에서는 어떤 경로를 알려줄까. 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각자의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최단경로로 안내할 것이다. 물론 통행료 내는 것을 싫어하는 운전자에게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서 통행비용이 최소가 되는 길을 보여줄 테니 내비게이션이 모든 운전자에게 최적 경로를 찾아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1952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교통학자인 워드롭은 사용자 균형(UE)을 제시했다. 모든 운전자가 자신에게 가장 빠른 길을 계속 찾다 보면 더는 경로선택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안정된 상태에 이른다는 가설이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우리가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최적 경로를 찾은 다음에는 그 길을 꾸준히 이용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UE는 ‘모든 운전자가 교통상황에 대한 완벽한 정보(Perfect Information)를 갖고 있고 합리적 행동(Rational Behavior)을 하는 동질적 집단(Homogeneity)이어야 한다’는 아직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건을 가정하지만 매우 상식적인 원칙이어서 길찾기 알고리즘의 뼈대이다. 만약 티맵이나 카카오T가 나에게 최적이 아닌 경로를 안내한다면 이건 법적 소송 감이다. 내비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하라는 안내 문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UE 경로정보는 정치철학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모든 운전자가 UE 경로를 이용하면 개인은 불만이 없지만(아무리 긴 통행시간도 자신에겐 최선이니까) 교통망 전체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더라도 서로 협력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면 된다. 그래서 워드롭은 두 번째 가설에서 모든 운전자의 총 통행시간이 최소화되는 상태인 시스템균형(SO)을 주장했는지 모른다. 통행을 적절히 배분하면 일부 운전자는 통행시간이 늘어나겠지만 전체 통행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긴급상황에서 일부 운전자의 희생을 통해 전체 교통상황을 최적화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교통학자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아직도 UE를 SO로 유도하는 해를 찾는 것이 엄청난 수학적 난제지만, 이보다도 운전자에게 SO 경로를 안내하는 것이 정치철학적으로 올바른 가이다.

이러한 길찾기 고민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같다. 지난 반세기 노동자, 사용자, 시민 모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 결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더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UE 상태이다. 시민사회가 정치철학적 SO 알고리즘을 시급히 찾아야 할 때다. 그렇게 되면 교통학자는 수학문제만 열심히 풀면 되지 않을까.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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