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 기념관 통해 살펴본 조소앙 선생의 삶
조소앙 기념관 통해 살펴본 조소앙 선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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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식 제막식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다”며 평화와 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정신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가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함을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를 인용해 역설한 대목이다.

이에 양주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조소앙(素昻 趙鏞殷, 1887~1958) 선생의 생애를 양주시 남면 황방리의 ‘조소앙 기념관’을 통해 재조명해 본다.

◇조소앙 기념관-조소앙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다
조소앙 선생은 1887년 함안 조씨 가문의 6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양주(현 양주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조소앙 기념관’이 들어서있다.

2016년 개관한 조소앙 기념관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소앙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며 선생의 고귀한 독립운동정신을 기리고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 후손들에게 애국정신의 함양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 개관식

기념관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발전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독립운동, 임시정부 외무부장 활동, 광복 후 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함은 물론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간 ‘완전한 균등’을 주창한 ‘삼균주의’사상을 다양한 문헌과 사진자료를 통해 전하고 있다.

기념관은 388㎡ 규모의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만㎡에 달하는 기념공원과 2015년 복원한 조소앙 선생 본가, 잔디광장, 생태연못, 추모공간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양주시는 지역의 대표 독립운동가인 조소앙 선생의 고귀한 독립운동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오는 10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조소앙 선생 기념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조소앙의 길을 찾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조소앙 선생 우드아트 체험, 태극기 석고방향제 만들기 체험, 임시정부 태극기 목판 체험, 무궁화 석고방향제 만들기 체험 등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 조소앙 선생 동상2

◇삼균주의 창시자, 소앙 조용은(素昻 趙鏞殷)
“우리 대한은 완전한 자주독립국임과 민주의 자립국임을 선포하고, 우리 대한은 타민족의 대한이 아닌 우리 민족의 대한이며, 우리 한토(韓土)는 완전한 한인의 한토이니 이천만 동포는 국민된 본령이 독립인 것을 명심하여 육탄혈전함으로써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는 그 해를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전제국가가 아닌 주권재민의 나라임을 온 세상에 알렸다.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반포하며 헌장의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밝혔으며 이러한 공화의 정신은 임시정부 헌법과 해방 후 제헌헌법, 1987년 개정된 지금의 헌법 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명과 민주공화국 정신을 제안한 이가 바로 양주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이다.

그가 창시한 ‘삼균주의’는 정치의 균권, 경제의 균산, 교육의 균학을 의미하며 정치·경제·교육의 평등을 기반으로 개인·민족·국가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가 꿈꾸던 이상세계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등을 위해서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통선거제와 주요 업의 국유화, 국비 의무교육제가 필요하며 민족과 민족의 균등을 위해서는 소수민족과 약소민족이 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국가간의 균등을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타도되고 전쟁이 금지돼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 조소앙기념관1

◇항일과 독립운동으로 채워진 조소앙 선생의 삶의 여정
조소앙 선생의 본명은 용은(鏞殷), 자는 경중(敬仲), 아호는 소앙(素昻)이었다. 6세부터 통정대부인 조부 조성룡에게 한학을 배워 15세인 1902년 최연소로 성균관에 입학해 선배인 신채호와 함께 항일성토문을 작성하는 등 확고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성균관 졸업 후 ‘황실 특파 유학생’으로 선발돼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부립 제일중학교에 입학해 1912년 26세 때 학업을 마치고 이듬해 북경을 거쳐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7년 7월 상해에서 독립운동가 14명과 주권재민론과 대동사상에 기초한 선구적 독립선언이었던 ‘대동단결선언’을 공표하며 공화제에 입각한 헌법의 초안을 닦았으며, 1919년 2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를 자주독립의 민주국가 건설을 대전제로 기초하며 삼균주의의 원형을 담았다.

이후 1919년 4월 상해 임정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임정 출범의 법적 뒷받침이 된 임시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의 기초위원으로 민주공화제 임정수립의 기초를, 1930년 1월 김구, 이시영 등 임정 요인을 포함한 28명과 함께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며 정치균등, 경제균등, 교육균등의 삼균주의를 창시하고 당의 및 당강을 기초한다.

193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삼균주의를 국시(國是)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을 채택했다.

1940년 9월 민족진영의 항일독립군 요인들이 총결집해 한국광복군을 창립했고 그해 10월 임정의 제4차 개헌을 통해 수립된 김구주석 체제에서 외무부장으로 선출됐다.

1941년 임시정부는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을 주의로 하는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공표하며 삼균주의를 임시정부의 기본이념 및 정책노선으로 확정했다.

▲ 조소앙기념관3

◇해방 후 납북…영원에 잠들다.
조소앙 선생은 해방 후 1946년 비상국민회의 의장으로 선출돼 자주적인 국가건설 운동을 추진했다.

제헌국회 구성을 위해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총선거에 불참했으나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 총선에서 서울 성북구에 출마해 우익의 거물 조병옥을 상대로 전국 최다 득표인 3만4천표를 얻어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선거 25일 후 터진 6·25 전쟁 때 납북돼 전시하에서 가혹한 생활을 견뎌야 했으며 김일성의 요구를 거부하고 납북인사들과 함께 독자적인 중립화통일운동을 전개했다.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삼균주의, 근대국민국가를 수립하고자 힘썼던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은 1958년 9월10일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 평양시 신미리의 애국열사릉에 고이 잠들어 있다. 현재 양주시 남면 황방리 선영에 선생의 가묘가 있다.

조소앙 선생이 남긴 삼균주의는 전쟁 후 이념대결 와중에 잊혀졌지만 기본정신은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스며들어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으로, 지금의 헌법으로 이어졌으나 한동안 월북인사로 분류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1989년 정부에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2003년에는 독립기념관에 삼균주의와 약전(略傳)을 새긴 어록비가 세워졌다.

한편 2016년 개관한 조소앙기념관에는 선생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파리강화회의 참여

양주=이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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