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옥 칼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전미옥 칼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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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책상 주변 서랍 등을 정리하다보니 솔솔 나오는 물건들이 있다. 어디선가 산 그림이나 사진엽서, 디자인이 돋보이는 편지지와 봉투, 혹은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예쁜 카드. 다 모아보니 꽤 된다. 필기구 통을 정리하다보니 손글씨 자주 안 쓰는데 무슨 펜은 그렇게 다채롭게 많은지 놀라게 된다. 어디서 받은 것들도 있지만 색깔별로 직접 산 것도 꽤 된다. 휴대전화나 태블릿PC, 노트북 등에 글을 쓰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으면서도 아날로그 기록에 필요한 도구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정리해 다시 넣어둘 일이 아니라 정말 이것들을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을’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 속엔 편지에 대한 노래가 제법 있다. 당장 이동원의 ‘가을 편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떠오른다. 무더위가 일시 정지시킨 것 같은 감성과 정서가 아침저녁 소슬한 바람과 함께 봉인해제되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에 띄워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요즘은 모든 소식을 모바일 메신저로 주고받는데,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이모티콘들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다양해졌다.

문자를 하지 않을 때라도 메신저 프로필과 SNS만 살펴도 연인의 생활을 대체로 읽을 수 있다는 젊은 세대 가운데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과 새로움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땐 손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그래도 손 편지의 감동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마음이 없으면 글을 쓰기도,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수고를 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실시간으로 물어도 되는 안부를 굳이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편지지 앞에 앉으면 같은 듯해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조금 더 끄집어내게 되는데 이게 불가사의한 손 편지의 힘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부인은 오랜 유배생활 중에 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혼인할 때 입었던 다홍치마를 보냄으로써 표현했는데, 선생은 부인의 색 바랜 담황색 치마폭을 잘라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막내아이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후, 선생 자신이 아비라는 것을 잊고, ‘슬퍼하는 너희 어머니를 위해 슬퍼한다’면서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라 전한다. 이런 마음은 얼굴을 본다고 쉽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편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말까지는 직접 얼굴 보며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의 상태를 모두 말로 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말을 적게 하는 게 미덕이었던 조선시대다. 하지만 조선시대라도 글로는 할 수 있다.

사랑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용기를 내게 해준다. 말로는 하기 어려워도 글로 쓰면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쓸 수 있다. 얼굴을 보고 말하는 대화나, 실시간 즉답이 오고가는 문자 대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사고의 정리가 가능하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다 쓸 수 있고 또 다시 읽어보면서 고칠 수도 있다. 이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할 방법은 많지 않다.

기업들의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시즌이다.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자기소개서 쓰느라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보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고 자기소개서를 보기 싫어질 수 있다. 이것이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과 어떤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면 펄쩍 뛸지 모르지만, 정말 있다. 대상만 다를 뿐, 구애든 구직이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고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설득하는 글쓰기다. 자기소개서는 인사담당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글이다. 자기소개서가 조금이라도 수월해질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를 내 편으로 만들고 설득하는 과정이 닮아 있는 연애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권하고 싶다. 또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이 진행하는 ‘대한민국, 편지로 하나 되다’라는 편지쓰기 공모전도 눈여겨보자. 편지의 힘을 빌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보는 것이다. 젊은 그대! 이 가을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 편지를 써보자.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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