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옥 칼럼] 향수의 잠재력
[전미옥 칼럼] 향수의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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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나 ‘향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이 지긋한 특정 세대의 전유물 같은 단어였다. 살아온 날이 어느 순간 뒤돌아봐 질 때나 그 즈음의 나이에서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련해지고 그리운 감정이 막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기억은 기억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화하면서 자주 왜곡된다. 옛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맞네 틀리네 하며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추억을 떠올리는 자리에선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부질없다. 그리운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지난달 23일엔 추억 소환으로 엄청난 역사를 쓴 클라우드 펀딩이 있었다. 그것도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가 해냈다. 15년 전에 TV에서 방영된 추억의 애니메이션 OST 발매에 한 달 동안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26억여 원의 펀딩을 성공시켰다. 애초 이 펀딩의 목표액은 3천300만 원이었으나 모금액은 이를 완전히 압도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에 앞서 이화여대는 봄 축제 때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 목소리를 낸 성우를 초대했는데, 테마곡 후렴구를 부를 때 함께 한 학생들의 떼창 영상은 지금도 회자된다.

90년대 생의 화력을 제대로 보여준 이 사건은 기성세대 시선에선 충격일 수 있다. 애들이 미래를 보며 살아야지 뭘 얼마나 살았다고 불과 15년 전 추억에 돈을 쓸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추억은 어느 세대에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청년세대의 팍팍한 현실은 부모님 슬하에서 걱정 없이 누렸던 어린 시절의 문화 콘텐츠가 너무나 아련하고 좋은 것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다 보면 잠시 그때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상반기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4>를 보며 울었다는 20대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학생도 이 영화 오프닝 때부터 눈물이 터져 나왔는데, 끝날 때는 더 울었다고 고백했다. 주인공 우디, 버즈와 함께 커온 느낌으로 영화를 본 세대는 암묵적으로 이 영화가 토이스토리의 마지막 시리즈라고 생각하면서 더 애착과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정들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그 마음은 꼭 슬픈 장면이 아니라도 충분히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실 향수는 보편적인 정서다. 그 시대의 디테일한 재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이 보편적 정서에 기대어 있다. 부모 세대는 부모 세대대로, 자식 세대는 자식 세대대로 같은 시대를 공유하면서 공감의 교집합을 찾아내면서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복고, 향수, 추억을 자극하는 그 모든 것들이 문화예술 콘텐츠가 될 수 있고 그 잠재력은 대단히 크다. 소위 밀레니얼세대, Z세대라고 부르는 젊은 세대가 얼마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지 안다면, 구매력이 커진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는 일이 필요하다.

SNS나 펀딩 플랫폼을 살피는 것은 지금의 트렌드와 2ㆍ30대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서 마케팅하고 펀딩을 성공시키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위에 가까이 있는 그들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말의 주도권을 내주고 질문하고 경청해야 한다. 요즘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잘 모르겠다는 20대 중반으로 가는 대학생도 10대들과 세대 차이를 느낀다. 어느 시대나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못마땅함은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준비부터 해야 한다. 앞서 말한 깊숙이 있는 그들만의 추억 같은 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콘텐츠가 보이고 더 나아가 비즈니스 아이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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