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수는 ‘우한폐렴’ 진보는 ‘신종 코로나’ / 병명도 이념 따라 달라지는 나라다
[사설] 보수는 ‘우한폐렴’ 진보는 ‘신종 코로나’ / 병명도 이념 따라 달라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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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병명 표기가 제각각이다. 조선일보는 28일자 1면에 폐렴 관련 기사를 머리로 올렸다. 제목은 ‘우한폐렴 2명, 엿새간 돌아다녔다’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2·3차 감염 여부 내달 판가름’이란 기사를 실었다. 이 기획의 컷 제목은 ‘우한 폐렴 비상’이다. 반면 같은 날 한겨레신문의 1면 머리기사의 컷 제목은 ‘신종 코로나 확산 비상’이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도 ‘신종 코로나, 한국 경제 복병으로 부상’이다.

28일 조간부터 나타난 병명 중복이다. 그리고 이 혼란의 구획은 정확히 이념적 색채와 일치한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성향의 언론은 ‘우한폐렴’으로,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진보성향의 언론은 ‘신종 코로나’로 쓰고 있다. 이런 병명 차이는 이외 언론사와 방송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발병 초기에는 언론사 구분없이 ‘우한폐렴’으로 쓰는 게 대세였다. 바뀐 것은 27일 오후부터다.

직접적 계기는 청와대 병명 정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 회의를 열었다. 손 씻기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강조했다. 이 내용을 브리핑하던 국민소통수석이 병명을 일괄 정정했다. ‘우한 폐렴’ 또는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사용된 병명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꿨다. WHO(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른 정식 명칭은 맞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이에 맞춘 병명 정정이다.

그런데 국민은 혼란스럽다. 언론이 서로 다르게 쓰고 있어서다. 자칫 명명에 따라 본인의 이념적 색채가 들통나지는 않을지도 신경 쓰인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병명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보수 성향 네티즌은 ‘대중국 저자세’로 몰고 있다. 시진핑 방한 등을 고려한 눈치 보기라고 몰아세운다. 진보 성향 네티즌은 ‘억지 발목 잡기’라 공격한다. WHO가 정한 공식 명칭이 왜 저자세 외교로 둔갑하느냐고 반격한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과거에도 전염병은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 않았다. 2002년 사스도 중국에서 발생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란 병명과 충돌없이 병기됐다. 2015년 메르스는 중동에서 발생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며 ‘중동’ 지역명을 자연스럽게 썼다. 우한 폐렴도 외신에선 마찬가지다. ‘우한 바이러스(wuhan virus)’,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편하게 쓴다. 우리만 싸우고 있다. 이념을 섞어 넣고 있다.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겠다. 이 또한 편견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청와대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은 지적해두고자 한다. 전염병 명칭 정의는 청와대 업무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나 국립의료기관이 해야 했다. 때마침 전문가들의 브리핑이 쉴새 없이 있다. 거기서 설명하고 바꿨으면 될 일이었다. 그걸 기자 출신의 청와대 수석이 갑자기 선포하고 나서니까 이런저런 논란이 따라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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