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세상에 공짜 술은 없다?
[삶과 종교] 세상에 공짜 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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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 ...
시인 정호승은 인생의 한 변곡점에서 분노와 원망이 끓고 있을 때 시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를 썼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도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고통을 주는가.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다”고 원망을 했다. 시간은 어머니처럼 사람을 다독여 깨닫게 한다. 후에 그는 분노와 원망으로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고백한다.

종종 우리는 원하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만나게 되고 예상치도 않은 인생의 고통을 떠안게 된다. 어느 누구도 실패와 좌절을 바라지 않는다. 고통의 십자가는 우리 인생 중에 피하고 싶은 첫 번째 목록이다. 그렇다고 피할 길도 없다. 그리고 불쑥 찾아든 고통과 좌절을 웃으며 맞이할 사람도 없다. 왜 우리는 인생 중에 찾아드는 고통과 좌절을 분노와 원망으로 대할 수밖에 없을까? 문제는 간단하다. 행복한 삶을 위해 설정해 놓은 우리의 인생 설계도면에는 안타깝게도 실패와 좌절을 수용할 공간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소원의 성취와 성공의 기쁨만을 위해 설정된 이 도면은 밀물 썰물이 시도 때도 없이 오가는 생의 바다에서는 불행하게도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아픔 없이 살아온 인생이 있을까? 당연히 이러한 설계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생의 질곡에 서서 쉽게 무너지고 만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원망했던 시인 정호승은 훗날 이렇게 고백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쓴맛을 보지 않고는 결코 단맛을 맛볼 수 없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한테 일어나는 불행한 일이 이제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내 차례구나’ 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 내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필자의 방에는 365일 매일같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벌써 몇 년을 함께 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매일같이 가시 끝에서 분홍색 꽃을 피우다 지다를 반복한다. 사람의 마음이야 날씨처럼 변덕이 심해서 웃다 울다 즐겁다 슬프다. 하지만 이 식물은 늘 한결같다. 어느 날엔가 꽃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이렇게 말을 걸어본 적이 있다. “꽃아, 너는 참 좋겠다. 늘 한결같아서, 늘 웃고 있어서, 늘 그렇게 꽃을 피울 수 있어서.” 그러는 동안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울림이 일었다.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피는 꽃이 있을까?” 꽃은 식물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생존의 수단이라서 자신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꽃을 피운다. 곧 자신의 감지장치를 최대한 사용해 빛의 양과 강도를 조절하고 온도를 맞추어 모든 에너지를 쏟아 꽃을 피운다.
작은 식물 하나도 이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온몸을 사르건만,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에 우린 어찌 이리 매집이 약한지, 새삼 수줍은 듯 피어 있는 분홍빛 꽃들 앞에서 그저 부끄럽고 낯이 뜨겁다. 

새해가 밝은지도 이제 두 달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주눅이 들지 않을 만큼 나름 떳떳하고 참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목차 없는 단편집 같은 기분은 왜일까? 
내 일상의 목차를 다시 점검해보며 한 줄 한 줄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볼 일이다. 머지않아 나만의 멋진 단편집 하나가 완성될 것이다.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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