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지역 공공 미술관들의 딜레마
[문화카페] 지역 공공 미술관들의 딜레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뮤지엄협의회(ICOM)가 채택한 정의에 따르면, 뮤지엄은 인류가 창출한 문화적 소산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구이다. 이러한 공적 기능 때문에 사립 뮤지엄에도 공공재원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환경 아래 뮤지엄들은 줄어드는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영역처럼 경영마인드의 도입을 요구받아 왔다. 또한, 과거의 전문가 중심의 뮤지엄에서 관객 중심의 뮤지엄으로 변모되고 있다. 점점 더 새로운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들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영역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여건하에서 공립 미술관들은 저마다 새로운 전시콘텐츠 생산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장품과 재원, 학예직의 전문성이 필수 요건이지만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춘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경우, 차별화된 자체기획전은 물론,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국제 순회전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구겐하임이나 루브르처럼 소장품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유명 도시들에 분관을 조성하기도 한다. 좋은 소장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미술관 운영의 경쟁력이 되고, 미술관들도 점점 빈익빈 부익부의 양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공립 미술관들의 경우,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체계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소장품, 예산, 전문성 측면 모두 미흡하기 짝이 없다.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은 대개 평균 5억 원 미만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물며 몇 년째 소장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문 인력인 학예사나 관장은 대부분 2~3년 계약직 신분으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 2~3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전시콘텐츠 생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개는 전임자가 계획한 전시를 처리하다 떠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려고 인기 있고 화제가 될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를 유치하도록 요구받는다. 몇 해 전 대구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전이나 작년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의 성공 사례가 반추된다. 이런 전시들은 대개 외부 기획사나 화랑을 통해 들여온 흥행위주의 상업적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 유치는 부분적으로 필요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미술관 내부의 학예 역량 축적에는 역행되는 전시들이다. 또한 이런 대형 전시는 지자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외부 기획사와 공동주최를 하게 되고, 기획사는 수익을 맞추려고 높은 입장료를 책정하게 된다. 그나마 수익을 맞출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적자를 감수하며 실적 쌓기에 만족한다.

하지만, 미술관들은 여전히 이런 블록버스터형 반짝 전시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정체성 구축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내부의 학예역량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며, 내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전시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체 역량을 쌓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공공 미술관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