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봄의 제전
[문화카페] 봄의 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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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다. 나뭇가지마다 봉오리가 가득하다. 봄을 알리는 움직임은 올해도 여전하다. 봄은 특별한 영감을 주는 계절인지 봄을 주제로 작곡된 작품이 많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득하다. 비발디의 <봄>에는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아지랑이 등이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는 매년 이맘때면 연주되는 단골 메뉴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은 봄꽃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지구의 오케스트라들이 어색한 봄을 맞는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모든 연주회가 취소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는 음악을 임의로 선택한다면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봄의 제전’ 이 어울린다. 원시시대의 미신숭배에 바탕을 둔 전통적 제례를 묘사한 행사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1913년에 작곡되어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는 음악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020년 3월, 인류는 기대를 훨씬 넘어선 최첨단 산업시대의 지붕 아래 기대어 살고 있지만, 원인 모를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우연이지만 가슴 아픈 두 장면이 오묘하게 오버랩 된다.

‘봄의 제전’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가 뿜어내는 풀냄새를 신비한 모습으로 묘사하며 시작된다. 마을의 현자와 어른들을 중심으로 조상과 태양신을 위해 희생될 처녀들을 납치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의 줄거리가 이어진다. 발레의 하이라이트는 선택된 처녀들의 조상을 부르는 춤판과 최후로 선택된 처녀가 제단에 바쳐지는 마지막 부분의 ‘희생의 춤’이다. 처녀의 죽음을 묘사하는 정체불명의 선율과 광폭한 리듬의 조합이 공격적인 분위기로 발전한다.

희생될 처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처녀들이 겪는 극심한 무력함과 자괴감은 악수 대신 팔꿈치로, 맑고 밝은 정겨운 웃음 대신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해야 하는 현 상황을 반사경으로 비춰준다. 나만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수척한 공포심이 깃들인 불신과 자기방어가 만연하다. 엘리베이터, 식당, 지하철 등은 실제 온도보다 훨씬 낮고 스산하다. 봄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 땅에서 음악가로, 더욱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에게 작금의 사태는 침울한 시련의 긴 터널이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의 생계는 심각하다. 하루의 연주를 통해 생활을 영위해온 그들에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대다수 연주자가 1회의 연주로 받는 금전적 대우는 척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마저도 먼 기억이 되어간다. 한 시간 반 정도 길이의 연주를 위해 연습에 쏟아붓는 셀 수 없는 시간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의 완성을 위해 평생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한 곡의 연주를 위해 쏟아붓는 시간은 수십 수백 시간을 넘어선다. 음악가들의 연주를 싼값 또는 무료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가 아직 문화 후진국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의 연방 문화부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피해를 본 문화기관과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약속합니다.”라는 문화선진국다운 정책을 먼저 발표하고 당분간 콘서트의 취소를 밝힌다.

후배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이다. “미쳐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미쳐라.”라는 말로 열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연주자들에게 미쳐야 한다고 설득할 근거를 상실하여 마음이 아프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문화관계자들은 허기진 청년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육성하지 않으면 선진국 근처에 갈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원하건대, 힘없는 젊은 음악인들의 힘겨운 하루를 위로할 수 있는 고마운 어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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