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옥 칼럼]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유영옥 칼럼]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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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초에 있었던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래 ‘인류 문명사적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이했다. 특히 올해 6월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가신 호국영령들의 그 거룩한 희생정신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 ‘6ㆍ25전쟁 발발’ 70주년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자못 심중하다고 보인다.

독립투사들, 6ㆍ25전쟁 당시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 민주주의의 이념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친 4ㆍ19혁명 참가자들, 동서냉전 시기 민주적 가치를 지키고 국가재건을 위해 타국에서 쓰러져간 월남참전용사들은 그 피 끓는 희생정신으로 나라를 구한 대표적인 분들이시다.

이러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은 우리가 신흥 개도국에서 경제성장과 조국 근대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꿈을 구현하고 선진국으로 부상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매우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호국영령들을 기리고자 하는 우리의 보훈정책과 행정은 아직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모두 미국이 왜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유해의 발굴에 열을 올리면서 ‘조국은 결코 그대를 버리지 않는다’는 국가적 의지를 국민에게 심어주려고 하는가를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해발굴에 대한 미국의 노력은 현역군인들의 시기 진작은 물론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킴으로써 국민적 연대의식 제고에 큰 몫을 한다. 한때 전쟁을 치른 베트남과 북한에서조차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전시에 산화한 유골을 찾아 유가족 품에 안기며 장엄한 행사를 벌인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위기 때마다 국민통합이 잘 이루어지는 근본 원인은 바로 온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는 보훈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당한 보훈정책의 방향은 군인에게는 올바른 국가관을 갖게 하고 국민에게는 안보의식을 강화시키는 일이며, 그분들의 유가족에게는 오랜 한(恨)을 풀어주는 일이고 순국선열에게는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아직 생존해 있는 혁명참가자나 참전용사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실질적 보상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이분들은 80대, 90대의 고령자들로서 정책의 긴급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절실하며 이와 함께 이들 호국영령의 숭고한 가치를 후세에 전승하는 문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들 호국영령의 장엄한 활약상과 그 숭고한 정신을 당시 현장에는 없었지만, 뒤늦게나마 그 후손들에게 전하는 통로는 공적 기억이다. 이 기억은 단발성 호국영령 추모행사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며 그들의 삶과 연결된 홍보전략, 현장교육이나 당시 상황의 재현을 통한 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성인은 물론이고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선열들의 거룩한 뜻과 정신을 계승시키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안보 불감증과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는 가운데 국난(國難) 발발 시 모든 국민이 결연히 일어서서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켜온 우리 호국전통의 근간이었던 애국심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 저변에는 분명히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와 선양을 통해 나라 사랑정신의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 보훈정책의 실패가 그 책임의 중심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머리’로 이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께서 발휘하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충정의 마음을 선양하고 기리는데 조금의 주저함과 망설임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며 국가유공자들의 ‘특별한 희생에 따른 특별한 배려’를 구현할 수 있는 제반 조치와 함께 합당한 예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영옥 국민대교수·국가보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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