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동양하루살이
[지지대] 동양하루살이
  •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 송고시간 2020. 07. 06 20 : 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잠실 주경기장에 난데없이 곤충들의 공습이 감행됐다. 그라운드에선 EAFF E-1 풋볼 챔피언십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2013년 여름이었다. 그해 압구정동은 이 녀석들의 운동장이었다. 당시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는 ‘압구정 벌레’였다. 5년 뒤에는 영화보다 더 기막힌 현실이 벌어졌다. 아예 경기가 중단됐다. 역시 벌레(곤충)들의 광란 때문이었다. 지난 2018년 6월14일이었다. 당시 잠실야구장에선 두산과 KT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요즘은 더 심각하다. 땅거미 질 때가 이 벌레들의 출근시간이다. 징그럽다. 여름이란 계절을 아예 반납하고 싶다. 밤이 깊어갈수록 쇼윈도는 하얗게 뒤덮힌다. 그러다 동이 틀 때면 주검들이 새하얗게 길바닥에 널브러진다. 남한강 주변 상인들의, 요즘 말로 웃픈 우화(寓話)다. 남양주시 와부읍 삼패공원과 궁촌천 일대가 그렇다. 양평군 양수리 두물머리도 마찬가지다. 양평군청 주변에선 절정을 이룬다. 동양하루살이 얘기다.

▶몸 길이 10~20㎜, 날개 편 길이 50㎜. 성충은 엷은 갈색이다. 겹눈은 갈색이다. 다리의 부절 사이는 검은색이다. 날개에는 전체적으로 엷은 검은색 세로줄 무늬가 미세하게 보인다. 꼬리 길이는 20㎜ 정도이다. 이 녀석의 신상명세서다.

▶한 민선시장은 아예 이 녀석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매일 오후 동양하루살이 주요 출몰지역을 돌면서 퇴치에 나서고 있다. 청색 끈끈이 트랩이 활용된다. 이 벌레들이 청색 조명에 가장 많이 모이고 끈끈이에 많이 달라붙는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모니터링 결과, 효과가 상당 것으로 판단돼 기존 10개에서 12개가 추가로 설치됐다. 다른 퇴치방법은 없을까.

▶197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의 록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은 <Epitaph>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우린 내일 어떤 일로 울어야 할지 두렵습니다.” 동양하루살이는 공교롭게도 2급수 수질에서 자란다고 한다. 2013년 초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출몰이다. 생태계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태가 벌어지는 건 따지고 보면 다 인간들 탓이다. 한낱 하루살이 때문에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과연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내일이 두렵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