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파주 소령원의 개방을 기대하며
[천자춘추] 파주 소령원의 개방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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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효를 통한 효제(孝悌) 정치를 한 사람이 영조 임금이다. 조선 최장의 재위기간 중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그에게도 희대의 비극이 있었다.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일이다.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에는 불안증세 외에 여러 정치적 이유가 함유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영조의 두 가지 콤플렉스 중 하나가 경종 독살설이며, 다른 하나는 모친 숙빈 최씨의 무수리 설이다.

경종 임금이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던 차에 신하들과 나인들이 놀랄 정도로 수라상 위의 감과 게장을 많이 먹었다. 갑자기 복통과 설사로 불과 5일 만에 승하하게 된다. 당시 세제였던 영조가 올린 감이라 흉흉한 소문이 그의 발목을 잡은 일이다. 또 하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보위에 오른 영조는 제일 먼저 어머니의 위상을 올리게 된다.

모친 추숭에 관한 일이 잘 남아 있는 곳이 청와대 옆 육상궁과 파주의 소령원이다. 육상궁이 혼을 모신 곳이라면 육신이 묻힌 무덤은 소령원이다. 소령원에는 영조와 관련된 다빈치코드가 곳곳에 남아있다. 소령원 비석(표석)에는 “숙빈은 내명부 중 최고의 지위였다”란 글이 있어 무수리설을 불식시킬 위안이 되었다. 비석의 받침석이 갈라질 때 왕세제의 몸으로 친히 글을 새겨 넣은 것은 특별한 일이다. 더구나 즉위하자마자 모친을 위해 조선에서 가장 큰 신도비를 세우고 제청을 만들어 어머니에 대한 진한 사모곡을 남긴다. 아마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가슴에 묻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소령원 논문을 쓴 필자로서는 이 아름다운 효심이 인구에 회자되기를 희망한다.

육상궁이 작년에 개방된 반면 소령원과 바로 옆 수길원은 여전히 비공개로 남아 있다. 이곳은 단지 영조의 효심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 조선 후기 문화의 역량이 한껏 남은 곳이며 궁원의 절차가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단지 주차장과 화장실 등 부속시설의 미비로 비공개로 남아 있는 것은 보완절차를 통해 점진적인 공개로 전환되어야 한다. 석굴암과 문경 봉암사도 석가탄신일만큼은 개방되는 바 소령원 역시 추석 연휴는 예약제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변 부지의 매입으로 제청 복원과 활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콘텐츠는 있되 감동을 주지 못하면 존속은 힘들다. 평생 시묘살이를 하고자 했던 영조의 마음이 누런 홍씨 감이 주렁주렁 열린 추석날 오롯이 가족에게 전달될 날을 기다린다.

차문성 파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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