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허술한 백신 관리, 정부가 배송까지 책임져야
[사설] 허술한 백신 관리, 정부가 배송까지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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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독감백신 무료 접종이 시작 하루 전 중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의료기관으로 배송하던 13~18세 접종 물량 500만 명 분량 가운데 일부가 상온에 노출돼 백신 효과뿐 아니라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보건당국이 독감과 코로나19가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예년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한 독감백신 무료 접종이 차질을 빚게 됐다.

무료 접종 중단 사태에 많은 이들이 독감백신을 맞지 못할까 걱정이다. 품귀 불안에 무료 대상이지만 돈을 내고라도 백신을 맞겠다는 이들로 병원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소아·청소년을 아이로 둔 부모나 임산부들은 “방역당국 조사 결과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유료 백신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유료 접종자인 일반인들도 백신 대란이라도 일어날까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의약품 도매 중소기업 신성약품이 백신을 상온에 노출시킨 실수에서 비롯됐지만, 국가백신 유통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백신 접종 중단은 경험없는 도매상이 하청에 하청을 거쳐 의료기관들에 배송하던 중 발생했다. 정부가 백신 도매상 선정 때 배송의 질은 제대로 평가않고 가격 중심으로만 입찰을 진행해 저온 유지 유통의 역량이 없는 업체까지 유통망에 뛰어들어 생긴 사고다. 고질적인 저가낙찰 등 공공조달시장의 후진적 관행이 빚은 예고된 사고로, 국민 생명이 걸린 보건의료는 저가낙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감 백신 무료접종은 국가사업인 만큼, 별도의 도매상 없이 국가가 책임지고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구매하고, 배분까지 해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필수예방접종 백신 공급방식 변경에 따른 가격산정 및 조정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중앙·지방정부와 보건소 등 공공의 백신 배분 책임을 강조했다. 보고서에선 “공공이 의료기관까지 백신을 직접 배송하거나, 전문 유통회사에 위탁 배송, 공급사와 백신 가격 협상 때 배송비용 조항 포함 등 세가지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백신 배송의 책임을 지금처럼 민간 도매상에 전적으로 맡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번 같은 황당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백신을 의료기관들에 배송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일일이 직접 배송까지 할 수 없다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할 수 없는 민간 운송수단에 배송을 맡기기보다 안전한 수송 용기에 투자하고 검증된 배송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등 냉장 유통에 투자를 늘리는 게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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