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도광양회, 중국의 두얼굴
[지지대] 도광양회, 중국의 두얼굴
  •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 입력   2020. 10. 06   오후 9 :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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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의 초기 프로필은 돗자리 장사치였다. 그러다 관우와 장비, 제갈량 등을 만나 천하를 평정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비다. 그를 영웅으로 키운 건 자신의 의도를 은밀하게 숨기는 전략이었다. 촉(蜀)을 취한 뒤 힘을 길러 위(魏)·오(吳)와 균형을 꾀했다. 치밀한 계책이었다. 철저하게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1천800여년이 흘렀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때와 다른 건 자본주의 도입세력과 사회주의 고수세력이 충돌하는 상황뿐이다. 그리고 천안문사태가 발생했다. 1989년 6월이었다. 중국은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수용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 민주주의를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중국식 사회주의 고수의지를 교묘하게 감춘 전략이다.

▶천안문사태 진압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민 낯은 서구에 큰 충격을 줬다. 중국의 비민주성과 인권유린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유ㆍ무형의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급기야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는 소련해체를 선언했다. 중국에게는 정신적 충격이자 체제 정당성에 대한 위협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살기 위해 또 자신을 감춰야만 했다.

▶등소평(鄧小平)은 경제건설에만 올인한다고 공표했다. 유비가 구사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선언이었다. 공산주의를 지키겠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철저하게 숨기면서 말이다. 그게 1992년 1월이었다. 18년이 흐른 중국은 중국몽(中國夢)을 구체화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를 건국한 지 100년이 되는 2049년, 그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천안문광장 오른쪽에는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世界人民 大團結 萬歲)’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사회주의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중국이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 꺼낸 넋두리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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