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코로나 장발장
[지지대] 코로나 장발장
  •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 입력   2020. 11. 23   오후 9 : 19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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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47)는 지난 3월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달걀 18개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건설현장 청소부로 생계를 유지한 그는 “코로나로 공사가 중단돼 수입이 없어지고,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가까이 물 밖에 못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후 그는 ‘코로나 장발장’으로 불렸다.

A씨 변호인은 “단순히 생계형이 아니라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달걀을 먹으려고 했던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당시 A씨는 보이스피싱 관련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여기에 달걀을 훔친 사건까지 더해져 구속됐다. 수원지법 형사2부는 지난 15일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동종 전과가 9회 있고, 누범기간에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며 코로나로 직장을 잃어 생활고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 최대한 배려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의 절도나 사기 같은 ‘생활고형 범죄’도 크게 증가했다. 식료품 가게에서 과자와 스팸 등을 훔치거나, 배추밭에서 배추 몇포기를 슬쩍하거나, 전봇대에 올라 전깃줄을, 식당 창문을 넘어 1만원짜리 주방용품을 훔치는 식이다.

생활고 범죄 증가세는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분기별 범죄 동향 리포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분기 전체 범죄 발생 건수(40만4천534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 증가했다. 유형별로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가장 많이 증가한 게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11.3%·15만5천718건)다. 경제위기에 취약한 고령층 범죄도 늘었다. 반면 폭력범죄(0.5%)나 교통범죄(1.2%)는 같은 기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굶주림으로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장발장’이 지금 우리 이웃이 되고 있다”며 생계형 범죄 해결책으로 푸드마켓 한 켠에 ‘장발장 코너’를 제안했다.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배가 고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사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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