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3. 가평 ‘설미재미술관’
[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3. 가평 ‘설미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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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관장, 佛 파리서 미술공부 1991년 귀국
대학 강의 등 활발한 활동 접고 탈서울 실행
세계적 미술학교 희망으로 가평에 꿈의 둥지
작업실 난로서 영감… 화폭에 불꽃 담아내
야외 조각공원 작품·대자연 아름다움 연출
가평군 설악면 37번 국도변 언덕에 위치한 ‘설미재미술관’은 2007년 개관, 지역사회미술문화 교육 및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가평군 설악면 37번 국도변 언덕에 위치한 ‘설미재미술관’은 2007년 개관, 지역사회미술문화 교육 및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언덕 위에 올라서자 툭 트인 언덕에 미술관이 서 있다. 가평군 설악면 유명로. 첩첩산중에 자리 잡은 설미재미술관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왜 이렇게 깊은 산중에 미술관을 세웠을까’하는 의문과 ‘이런 곳에 터를 잡고 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마련이다. ‘눈이 아름다운 언덕 위의 집’이란 뜻의 ‘설미재’는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멋진 이름이다. 야외에 세워진 조각 작품을 살펴본다. 고구마 이파리를 닮은 호미 날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 꿈틀대듯 숲을 이루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둥근 기둥 끝에 호박넝쿨처럼 나선형의 가는 줄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다. 야외 조각공원에는 20여점의 멋진 설치작품이 푸른 하늘과 숲을 배경으로 서 있다. 안재홍 작가는 대나무를 통해 인체의 조형을 표현했고, 전향섭 작가는 농기구를 가지고 농업과 예술의 소통을 조형물에 담아냈다. 설미재미술관(관장 추경)은 작지만 활동력이 왕성한 젊은 미술관이다. 매년 중견작가와 전시 기회를 갖기 어려운 신진작가에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전업 작가들이 상주하며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추고 있는 것도 미술관의 자랑이다. 최근에는 미술관의 주도로 지역 기업과 힘을 합해 가평에서 미술시장을 여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산골에서 미술시장을 연다는 발상은 어떻게 했을까. 설미재미술관은 알아 갈수록 흥미로운 곳이다.
 

추경 설미재미술관장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추경 설미재미술관장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대안미술학교를 꿈꾸며 가평 산중에 미술관을 세우다

설미재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추 관장이 밝힌 발언에서 미술관의 설립 목적과 비전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살며, 일하며, 느끼며, 창조하며, 토론하며, 나누는 새로운 미술발전을 위해 여기 설미재미술관에 작은 씨앗을 뿌립니다. 설미재 미술교육체험 프로그램은 직접 씨 뿌려 땀 흘려 가꾸며 대지로부터 배우고 명상을 통해 참자아를 발견하여 개인의 잠재적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전문화한 자연친화적 교육프로그램입니다. 설미재 창작스튜디오에서는 작가 공동체를 활성화하여 생명사랑, 인간존중, 환경보호를 담보할 새로운 미적 가치관을 모색하고 정립해 나가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의 씨 뿌림이 자기 안의 세계를 발견하고 미래를 품어내는 21세기 예술가의 탄생으로 열매 맺기를 기대합니다.”

미술관 관장인 추경 작가는 동아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85년부터 6년 동안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조형미술학과 석사,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1년에 귀국한 그는 서울에서 작업하며 동아대에서 강의하고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20여회의 개인전을 연 전문작가이자 교육전문가이기도 한 추 관장은 1998년 문득 서울을 벗어나기로 작정한다. 조용한 작업실을 찾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가평에 작업실을 얻게 됐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쇼미르와 같은 세계적인 미술학교로 키울 수 있는 국제미술대안학교를 세우는 꿈을 가졌지요. 세계적인 미술음악학교는 모두 대안학교에서 출발했거든요.”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추 작가는 문화예술에서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인다. 초등학생들이 대상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중학생 위한 ‘나를 찾아서 떠나는 미술여행’, 다문화가정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미술체험교실, 장애인 미술체험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과 거리가 아주 멀 것 같은 농민들도 미술관을 찾게 만들었다. 2017년부터 진행하는 ‘설미재아트팜프로젝트’는 농업과 예술의 소통을 꿈꾸며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강신영 작가의 ‘나무물고기’. 윤원규기자
강신영 작가의 ‘나무물고기’. 윤원규기자

■ 바람과 불꽃에서 인생을 배우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설악면 산중에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 추경의 작품 주제는 바람에서 불꽃으로 건너뛰었다. “바람과 햇살, 비와 눈이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자연과 호흡하며 살았다. 오랜 시간 직관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명상하면서 주변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억해왔다. 바람은 그 허허로움과 자유로움 때문에 20여년 간 내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작가는 문득 자신이 그동안 한 주제에 너무 오래 매달려왔음을 깨닫고 2016년 개인전을 열어 ‘바람’을 결산하고 불꽃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술관에서 불꽃을 감상할 수 있다.

“새로운 작업을 실험하던 어느 한겨울, 나는 작업실 난로의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불꽃에 매혹되었다. 이때부터 ‘불’을 내 작업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작품을 실험하는 긴 산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마침내 새로운 불꽃 작품이 탄생됐다.”

동양사상에 해박한 작가의 설명이 이어진다. “내 작품의 주제는 세상을 이루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서 기원한다.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인해 대자연이 가능하고 생명체의 존재가 가능하다. …불, 불꽃을 통해 생명체가 발산하는 호흡, 혼과 같은 것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업 과정도 흥미롭다. 캔버스가 타지 않게 돌가루를 엷게 바른 후 아크릴 물감으로 밑 작업을 한다. 이때 불을 가까이 대면 물감의 질료성이 기화하거나 물결처럼 유동하면서 어떤 미지의 이미지가 태어난다. 완성된 밑그림 위에 숯을 뿌리고 한지로 전체를 매운 후 불로 태워나간다. 불꽃은 산소와 만나 캔버스 전체를 너울너울 흘러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조각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외전시장에 마련된 조각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2020 가평아트페어를 기획하다

미술시장 진입이 어려운 신진작가의 미술품 판로개척 지원과 국민의 미술문화 향유 및 미술품 소장문화 확산을 이끈다는 목표를 가지고 설립한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매년 예술단체를 선정해 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미술 장터를 지원하고 있다. 설미재 조형연구소는 2020 가평아트페어의 사업 주체로 선정됐다. 지역작가와 신진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가평아트페어는 2020년에 처음 시도한 사업이다. 경기도 가평을 비롯해 청평, 양평, 남양주 등 인근 소도시에서 활동하는 중견작가와 신진작가 50여 명과 함께 ‘쉽고 친절한 전시’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상과 가깝기에 더 유쾌한’ 미술장터를 열었다. 현재 코로나19로 작가들은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추 관장은 이 기획을 연 까닭을 이렇게 들려준다. “가평아트페어는 예술이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고 가평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축제로 키워나갈 작정이다. 이 행사를 후원하고 작품을 구입한 지역의 기업들이 늘어나 가평아트페어가 지역의 축제로 탄탄하게 자리 잡기를 바란다.”
 

현재 설미재미술관 전시장에서는 내년 2월 말까지 신소장품전을 통해 다양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현재 설미재미술관 전시장에서는 내년 2월 말까지 신소장품전을 통해 다양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내년 2월 말까지 ‘2020 소장품展’

설미재미술관에는 비전 있는 젊은 작가들이 상주하고 있다. 현재 박중현, 정명화, 이근아, 하춘(서양화). 최성환(사진) 5명의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뒤에는 산,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겨울에는 눈이 펄펄 내리는 이곳에 살다가 이 좋은 곳을 후학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에 후배들과 ‘화가 공동체’를 꾸려 나가자는 다짐을 했다.”

추 관장의 바람대로 설미재는 젊은 작가들이 기대는 언덕이 됐다. 겨울은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계절이지만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거룩한 시간이다. 설미재에 깃든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며 작품 생산에 심혈을 쏟을 것이다.

설미재미술관은 지난 1일부터 ‘2020 소장품전’을 열었다. 내년 2월 말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2점의 강렬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김원백 작가의 ‘유전자로부터’라는 작품은 생명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것이며, 김유섭 작가의 회화 작업은 다양한 첨단 재료의 특성을 살려 미래의 자연풍경을 표현한 것이다. 반추상화한 김종근의 ‘풍경’ 작품, 한지를 겹겹이 바른 후 문자를 음각으로 파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허종화 작가의 평면 작품, 여인의 기억과 추억을 옷에 담아 판화형식으로 표현한 방인의 작가의 ‘그녀의 기억’이 있다. 그밖에도 안기호, 양경선, 이선희, 황호섭, 추경 작가의 작품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코로나로 침체되고 무거워진 발걸음에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다.

설미재미술관은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설악IC 유명산 방향으로 1㎞ 좌측 언덕에 있다. 대중교통은 잠실에서 직행버스(7000번)를 타고 설악터미널에서 내려 일반버스(32-11, 32-16 등)로 갈아타면 된다. 설악터미널에서 미술관까지는 버스로 10분 정도 걸린다. 관람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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