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 신청도 못한 독립유공자 316명, 인천대가 발굴
포상 신청도 못한 독립유공자 316명, 인천대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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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천대학교가 16일 3·1절 102주년을 기념한 독립유공자 발굴 및 국가보훈처 포상신청에 앞서 ‘제5차 독립유공자 316명 포상신청발표회’를 했다.

이날 유공자에 오른 최태환(崔泰煥) 지사는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인산 때 검은 리본을 단 일장기를 찢고 전북 정읍 시내에 백기를 걸어 정읍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포상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그의 사연은 막내딸인 최영임씨(88)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고완남(高完男) 지사는 1939년 이화여고보 5학년 재학 중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오빠 고영완 지사와 함께 조선학생동지회 전라도 책임자로 활약했다. 이후 결혼생활 중 함흥형무소에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유산했고, 후유증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 됐다.

그의 조카 고병돈씨(77)는 “선친인 고영완 지사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그 기록이 지문대장에 남았으나 고모의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며 “판결기록이 북한에 있는 경우는 특별히 심사규정을 마련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은 316명의 공적을 설명했다.

1916년 ‘한영서원창가집’ 사건으로 애국창가집을 제작·배포하고 지도한 송도고보(1917년 교명 변경) 교사·학생 수십 명이 잡혀가 28명이 3개월 동안 고초를 겪은 후 교직원 5명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건을 발굴했다. 또 용유도 3·1만세의거 주도자로 징역 1년 6월 옥고를 겪은 조명원(趙明元:일명 趙壽童) 지사를 비롯해 강화도·덕적도·영흥도 출신을 포함해 판결문이 있는 경인·서울지역 미 포상자 120여명과 일제의 제국주의에 반발하는 송도고보 학생들의 ‘개성격문 사건’ 관련자 20명의 기록을 일본 기밀문서에서 발굴했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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