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8-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 8-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정집 벽면에 체 게바라의 모습이 걸려 있다

기념비 뒤편에는 추모관과 전시관으로 구분된 박물관이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훨훨 타고 있는 엄숙한 장소인 추모관에는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함께하였던 6명의 동지 사이에 체 게바라의 이름이 적힌 묘비가 가운데 있다.

전시관에는 그의 본명인 ‘에르네스토 케바라’라는 이름이 적힌 출생증명서, 어릴 때 그린 그림, 의학 공부할 때 사용하였던 책과 물건 등, 혁명군으로 활동할 때 입었던 옷과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어릴 때 사진과 혁명 중에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이나 동지들과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 그리고 의사로서의 진료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인상적이다.

▲ 노점에 있는 체 게바라의 다양한 기념품들
노점에 있는 체 게바라의 다양한 기념품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에 결정적으로 승리한 격전지가 있다. 그는 바티스타 정부군 병력과 무기 보급 열차가 산타클라라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에 불도저로 철로를 끊고 열차를 전복시킨 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함으로써 혁명군이 승리하는 데 발판이 된 전투 현장이다. 그러나 볼거리로는 불도저와 열차를 전시한 것이 전부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곳의 승리로 혁명군이 아바나까지 입성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 곳이다.

산타클라라에는 전투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때 정신을 기리기 위한 혁명의 흔적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벽화 등이 다양하게 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체 게바라가 이곳에 입성할 때처럼 깁스한 왼쪽 팔을 목에 거는 그의 동상과 “Hasta la vitoria siempre” ‘계속 승리를 향해’ 또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고 도시에는 구석구석 그의 체취가 아직도 남아 있다.

▲ 산타클라라 시내 기념품 가게 진열대에 있는 체 게바라 티셔츠
산타클라라 시내 기념품 가게 진열대에 있는 체 게바라 티셔츠

체 게 바라는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콩고로 갔으나 언어와 종교의 공통점이 많은 남미와 달리 아프리카의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1966년 11월 변장한 채 홀연 단신 볼리비아에 입국하였다. 그는 볼리비아 공산당에서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11개월 동안 방황하던 중 미국에 의해 양성된 볼리비아 정예 레인저 요원의 매복에 걸려 1967년 10월 8일 총상을 입고 생포된 다음 날 비밀리에 처형되었다. 그는 처형 직전 빈사 상태에서도 주저하는 집행자에게 “당신이 날 죽이려고 온 것을 알고 있다. 떨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라! 당신은 단지 한 사람을 죽이는 것뿐이다!”라고 일갈했다고 전한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39살의 젊은 나이로 마감하였다.

▲ 체 게바라가 북한을 방문하여 한복 입은 여성과 춤추는 모습의 자료 사진
체 게바라가 북한을 방문하여 한복 입은 여성과 춤추는 모습의 자료 사진

박태수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