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강 언덕에서 물새가 우네
봄날은 가고 강 언덕에서 물새가 우네
  •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 노출승인 2010.05.09
  •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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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드라 /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눈(雪) 내리던 4월이 갔다. 스산한 ‘오불(五不)의 계절’이었다. 불행하고 불길하고 불쾌했다. 도처에 불만이 팽배하고 그래서 불안했다. 서해에서 ‘천안함’이 침몰, 46명의 해군이 목숨을 잃고, 실종장병 구조작업에 앞장선 UDT 한주호 준위가 순국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귀환하는 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금양호98호 선원 9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투기와 헬기가 추락하는 육·해·공군 사고가 잇따랐다. 금강산관광지구 내 부동산들을 압수당했고 종사자들이 쫓겨났다. ‘민선(民選)’이라는 미명하의 수많은 탐관오리들의 천박한 행태가 드러났다.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들이 무참히 도살당했다. 103년 만의 이상저온으로 봄농사를 망쳤고 꽃들이 피었다 얼어 죽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수상한 봄날이었다.

그 서러운 봄날을 따라서 한국의 가인(歌人) 백설희(白雪姬) 여사가 5월5일 83세로 세상과 작별했다. 불후의 명곡 ‘봄날은 간다’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26세 때 청아한 목소리로 부른 ‘봄날은 간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한(恨)의 정조를 담았다. 6·25 전후 한국여성들의 애상(哀想)을 절절히 풀어냈다. 여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가슴에 꽃을 던져주었다.

세월이 흘러도 ‘봄날은 간다’는 이미자·배호·조용필·나훈아·하춘화·장사익·이은하·이동원·심수봉·한영애씨 등 많은 가수들이 제각각 다른 음색으로 불렀다. 그러나 어찌 백설희 여사의 육성에 비하랴.

‘봄날은 간다’는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靈感)을 주었다. 같은 제목 또는 패러디한 시가 나왔다. 애창곡으로 즐겨 부른다. 고은·안도현·기형도·정일근· 이승훈 등 시인들이 ‘봄날은 간다’를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 문예지 ‘시인세계’가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조사했을 때 ‘봄날은 간다’를 제일 많이 꼽았다. 대중가요의 서정성과 호소력이 눈물겹다는 소릴 들었다.

예명 ‘백설희’는 ‘녹지않는 에베레스트산의 눈처럼 연예인으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강점기인 1943년 조선악극단(KPK)에 입단하면서 연예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인은 ‘백설희’로 ‘에베레스트산의 눈’처럼 그렇게 살았다. 1949년 KPK악단이 만든 악극 ‘카르멘 환상곡’에서 주인공 카르멘 역을 맡으면서 스타덤에 오른 후 ‘목장 아가씨’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하늘의 황금마차’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가수 전영록씨·전보람양을 아들·손녀로 남기고 집을 나선 고인은 5월7일 경기도 광주시 삼성공원에 있는 남편 황해(黃海) 선생 유택에서 5년만에 재회하고 그 곳에 머물렀다.

“물새 우는 고요한 강 언덕에서 / 그대와 둘이서 부르는 사랑 노래 / 흘러가는 저 강물 가는 곳이 어디뇨 / 조각배에 사랑 싣고 행복 찾아 가지(자)요 / 물새 우는 강 언덕에서 / 그대와 둘이서 부르는 사랑 노래” (손석우 작사·박시춘 작곡·백설희 노래 ‘물새 우는 강 언덕’)

봄날은 가고 오늘 강 언덕에서 물새가 운다. 지난 ‘4월의 눈물’을 한탄하는가. 봄날 떠난 백설희 여사를 그리워 함인가. ‘물새우는 강 언덕’이 세월처럼 흘러간다. 물새가 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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