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씨
조용필씨
  • 임양은 주필 yelim@ekgib.com
  • 송고시간 2011. 04. 17 19 : 54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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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교분은 없었다. 몇차례 접촉할 기회만 있었다. 그때가 1980년대 중반이다. 조용필씨 오빠부대가 한창이던 무렵이다. 한 번은 콘서트를 마치고도 공연장을 둘러싼 오빠부대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경비를 맡고 있던 전경의 복장을 빌려 입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서울신문에서 낸 TV전문잡지 ‘TV가이드’에서 한동안 일하며 독자를 위한 초청 콘서트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그 시절 인상 깊은 것으로는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조선조 마지막 왕세자비인 이방자 여사를 뵌걸 들 수 있다. 조용필씨와 대담을 갖기 위해 함께 찾았었다. 이방자 여사는 “특히 ‘한오백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 데 시종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세월이 흘렀다. 조용필씨도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그런데 조선일보 16일자 1·2면, 한겨례신문 8면 등에 그의 감동적인 기사가 실렸다. ‘가왕이 손잡고 껴안자, 울며 웃으며 소록도가 춤을 췄다’는 조선일보 1면 제목이다. ‘와! 약속대로 조용필이 왔다 소록도 들썩’ 한겨례신문 제목이다. 한센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이다. 그냥 노래만 한 것이 아니다. 객석을 두바퀴나 돌며 일일이 손잡고 포옹하는 등 스킨십을 나눴다고 한다. 가왕은 이렇게 해가며 ‘친구여’ ‘단발머리’ ‘허공’ 등을 불렀다. 감격에 겨워 눈물만 짓던 객석은 이윽고 모두 일어나 두둥실 춤을 췄다는 것이다.

이날 공연은 지난해 5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갔다가 두곡만 부른 것을 현지인들이 아쉬워해 나만의 무대로, 다시 찾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한다. 안지켜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약속을 지키면서 언론엔 숨겼는 데 어떻게 일부에서 알고 쫓아갔던 모양이다.

그가 단독출연하는 무대 제작비는 매우 비싸다. 또 이유가 있으면 무료공연도 사양치 않는다. 젊었을 때도 이랬다. 그 무렵에 물은적이 있다. “공짜로 해주면 돈은 언제 버나요?” 대답은 이랬다. “인기가 갈려고 할 때 벌어도 돼요” 여전히 위문공연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이는 먹었어도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조용필씨가 경기도 출신, 화성시 송산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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