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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에듀-클래스]8. 빙빙돌자, 춤으로 동네한바퀴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노출승인 2012년 08월 20일 13:14     발행일 2012년 08월 21일 화요일     제0면
   
 


화성 반월동 자율방범순찰대원들이 춤바람이 났다.
흔히 방범대원이라 하면 늦은 밤 동네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순찰 봉사를 하는 사람들.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은 방범대원들이 춤바람이 났다니 큰일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화성시 반월동 방범대원들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르다.

평소 순찰이 끝나면 자연스레 대포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이들에게 지난 4월 춤의 전도사들이 찾아왔다. 국민대 무용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Arts communication21’이 춤으로 50대 방범대원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일명 ‘빙빙돌자, 춤으로 동네한바퀴’.(이하 빙빙) 지루박도, 차차차도 아니다. 그들 삶의 추억이 담긴 7080 노래에 그들만의 삶을 녹여낸 춤을 춘다. 그래서일까? 함께 춤을 배운지 5개월. “이런걸 어떻게 해”하며 쑥쓰러워하던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지지 않는다.

■ 흐르는 땀방울에 즐거움은 2배
요즘 세계를 열광에 빠뜨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반월동 방범초소 옆 건물을 들썩이게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민망한(?) 자세의 아저씨 군단이 스트레칭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강사들이 돌아다니며 뻣뻣한 그들에게 자세교정을 해주자 여기저기서 “아~아파!”, “그만, 그만!”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팔, 다리는 후들후들거리고 중간에 주저앉는 사람도 눈에 띈다.

잠깐의 휴식시간, 생소한 이름이 들려온다. ‘꽉꽉이’, ‘왕팔뚝’, ‘초콜렛’, ‘졸려’ 등. ‘빙빙’에는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빠, 어느 회사 사장이란 이름은 없다. 자신이 정한 별칭을 가진 ‘나’만 있을 뿐. ‘빙빙’ 안에서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자칭 꽃미남 강인형씨(졸려·53)는 “처음에 수업왔을 때 졸려서 별명을 졸려라고 지었다”며 “이제는 춤추는 게 재밌어서 안졸려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떠나요’ 음악이 흘러나오자 흩어졌던 방범대원들이 대열을 갖추고 리듬을 탄다. 그런데 2주간의 방학을 보내고 온 탓일까? 안무도 가물가물, 동선도 가물가물이다. 강사들의 시범이 이어지자 이내 감각을 되찾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안무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이 따라하기 쉬운 경례춤, 고스톱 춤에서부터 7080 시대를 평정했던 허슬춤까지 이어진다.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10여명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동작에서는 “네 팔뚝이 나 가리니까 뒤로 좀 빠져”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웃음 폭탄이 터졌다.
가장 열심히 춤사위를 뽐내던 한상구씨(짱구·47)는 “지각할까봐 매주 목요일마다 밥도 안먹고 수업에 참여한다”며 “동작이 어려우면 따라하지 못하겠지만 선생님들이 우리에 맞는 춤을 쉽게 가르쳐줘 재미있다”며 해맑게 웃어보였다.

   
 
■ 방범대원의 무한변신, 위기는 있었다
‘빙빙’ 분위기가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개개인마다 본업이 있고 밤마다 지역 순찰을 돌면서 매주 목요일 수업에 참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남자들이 무슨 춤을 춰?”, “오늘 약속 있는데” 등의 이유로 수업 참여율은 저조했고, 의리로 참여한 방범대원들 역시 시큰둥한 모습에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춤을 출 수 있는 공간마저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강사들조차 ‘빙빙’을 포기하려 했었다.
이 때 김흥배씨(희망·53)의 결단이 ‘빙빙’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빙빙’ 존폐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합시다”를 외쳤던 것. 정식으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에 한해 서명을 받았다. 방범대장 박길서씨(왕팔뚝·47)는 자신의 건물 중 비어있는 공간을 ‘빙빙’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반월동 방범대원의 ‘빙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4월 ‘빙빙’이 시작되고 호응도가 낮아 무산 위기에 빠졌었다”며 “프로그램 자체가 좋아 좀 더 이끌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직접 서명을 한 대원들은 달라졌다. 스스로 솔선수범을 하며 서로에게 참여를 독려했고, (사)화성지킴이연합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병점 1·2동, 기배동 방범대에도 프로그램 참여를 추전했다.

박씨는 “처음엔 춤을 춘다는 게 나조차 의아했다. 1층에 있으면서도 “올라갈께요”라고 말하고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였다”며 “지금은 오히려 ‘빙빙’이 활력소가 돼 약속도 잡지 않는다. 오늘은 우리 얘기를 들은 병점 방범대가 참관 수업을 하고 갈 정도”라고 뿌듯해했다.
강사 진승화씨(26)는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눈 감고 내 얼굴 그리기, 마인드맵, 인생그래프 그리기 등까지 했었다”면서 “이제는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드는 춤을 출 때 더 신나하신다”며 그동안의 소감을 털어놨다.

   
 
■ 중년 남성, 세상에 눈을 뜨다
‘빙빙’을 처음 제안한건 다름 아닌 진창운씨(까치·55)의 딸 승화씨였다. 승화씨는 6년째 방범대원 일을 하고 있는 아빠가 순찰을 마친 뒤 매번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게 늘 못마땅했다.

‘Arts communication21’에서 활동 중이었던 승화씨는 단체에 이런 상황을 전했고, 논의 끝에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반월동 방범대원을 대상으로 ‘빙빙돌자, 춤으로 동네한바퀴’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
‘빙빙’이라는 명칭은 BB세대(베이비부머)와 Being(존재)을 합쳐 만든 것으로 , ‘BB세대의 중년 남성들이여,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현재를 즐기자!’라는 큰 뜻을 담고 있다.

방범대원들이 해석한 ‘빙빙’은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순찰을 돌아서 빙빙, 춤을 춰서 빙빙, 술 한잔 해서 빙빙”이라는 것.
딸 덕분에 어깨가 으씩해진다는 진씨는 “매주 내 자유시간 2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땀을 흘리고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서희영 Arts communication21 대표(30)는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부터 춤을 가르치자가 아니라 중년 남성들이 잃어버린 자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며 “‘빙빙’을 통해 방범대원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을엔 방범대원 가족들과 함께 춤을 배울 수 있는 야유회를, 겨울엔 안무를 완성시켜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수업 시작 당시 인생그래프를 그렸던 것처럼 ‘빙빙’의 변천사를 그래프로 그려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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