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막오른 제18대 대통령선거 대선 링위에 오른 박근혜
[Issue] 막오른 제18대 대통령선거 대선 링위에 오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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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헌정 사상 첫 여성후보
84% 압도적 득표율…“국민대통합 시대 활짝 열겠다”

오는 12월 19일 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새누리당 후보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출됐다.

새누리당은 8월 20일 오후 일산 킨텍스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8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20%)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박 전 위원장을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박 후보는 집계결과 선거인단 투표에서 7만1천176표, 여론조사 지지율(74.2%)을 환산한 득표수에서 1만5천413표를 얻어 전체 유효투표의 84%인 8만6천589표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주요 정당에서 여성 대통령 후보가 탄생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현직 지사로 경선에 참여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선거인단 5천622표, 여론조사 지지율 환산 득표수 3천333표를 얻어 8.7%인 8천955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김태호 의원은 3.2%·3천298표를 받았으며,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2.6%·2천676표,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1.6%·1천600표를 각각 기록했다. 박 후보의 득표율은 역대 대선 경선에서 최다 득표율을 기록했던 지난 2002년 이회창 후보의 68%를 크게 뛰어 넘는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박 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대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며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라면 그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글 _ 강해인·김재민기자 hikang@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박근혜, 그는 누구인가? 퍼스트레이디서 대선후보로…
15대 총선 ‘여의도 입성’ 내리 5선…2001년 당 개혁 요구 외면에 탈당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한국 정치사상 첫 집권 여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다. 아니, 이제까지의 정당사에서 있어서도 군소정당을 제외한 정통 정당사의 첫 여성 대통령 후보다. 그러나 박 후보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에 있어 질곡의 정치사를 모두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를 흉탄에 잃은 설움 당해
박근혜 후보(60)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로 성심여고와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22세 때인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간첩 문세광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27세 때인 1979년 10월 26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를 당해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설움을 당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1979년까지 퍼스트 레이디를 대리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청와대를 나온 뒤 걸스카웃 명예총재, 영남대 이사, 육영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후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대구 달성)로 15대 국회에 입성했으며, 19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대구 달성 선거에서 당시 여당에 크게 뒤졌던 판세를 극적으로 뒤집어 ‘달성 대첩’이라고 불렸다. 여의도에 입성하기 전인 1994년부터 17대 국회 초반인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인협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천막당사로 위기의 당 살려내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임명직을 마다하고 선출직 부총재 경선에 나서 당선됐다. 하지만 이듬해 2001년 총재 한 사람에게 공천권 등 모든 것이 집중되는 정당 시스템과 정치문화의 변화 등 당 개혁안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해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대표를 역임했다.

2002년 5월 이사로 재임중이던 주한 EU상공회의소 산하 재단인 유럽-코리아재단의 주선으로 방북, 김정일과 회담을 갖기도 했다. 그해 대선을 앞두고 합당 형식으로 한나라당에 다시 합류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한나라당이 ‘차떼기 부패당’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전멸 위기를 맞을 때 대표 경선에 나서 당선됐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저는 오늘 ‘신에게는 아직도 열 두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다.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당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연설, 대회장을 압도했다.

대표에 당선된 뒤 그는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부지에 천막당사를 마련, 사죄의 마음으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총선을 준비했다. 그 결과 예상을 깨고 121석의 선전을 거뒀다. 이를 통해 그는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피습으로 생사의 갈림길
2006년 5·31 지방선거 기간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일을 당했다. 선거를 열흘 정도 앞둔 5월 20일 신촌 사거리 유세중 단상에 오르는 찰나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얼굴을 크게 베었다. 11cm에 이르는 상처였지만 아슬아슬하게 안면신경을 피해가고 기적같은 수술이 이뤄져 살아난 그는 이날로 인생의 2막이 시작됐다고 회고한다.

60년 삶이 곧 ‘대한민국 현대사’
2004년 천막당사 배수진 총선 선전…2007년 이명박 후보에 석패 ‘와신상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해 말 대표에서 물러난 그는 2007년 대선후보 도전에 나섰으나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아깝게 패했다. 당시 일반 당원·대의원·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는 이겼으나 여론조사에서 뒤져 후보자리를 내줬다.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대선 후보 선출까지
2011년 12월 9일 홍준표 대표가 디도스 파문으로 인해 사퇴하며 당이 지방선거 참패가 예상되는 등 위기를 맞자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 수습을 맡겼다.

그는 비대위원장을 맡은 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총선을 준비, 19대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과반이 넘는 152석을 획득해 1당을 유지했다.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고 황우여 대표(인천 연수) 체제가 출범하자 7월10일 18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캠프명은 ‘국민행복캠프’로 정하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정했다.

글 _ 김재민 기자  mkim@kyeonggi.com 사진 _ 연합뉴스



[interview]

첫째도, 둘째도, 오로지 국민
파벌·과거사 논쟁 무의미…정치권 최우선 과제는 ‘민생’

새누리당 제18대 대선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는 과거사 인식과 관련, “정치권에서 민생을 제쳐놓고 그 문제를 갖고 싸우고,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받은 뒤 기자회견에서 5·16과 유신, 고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선 선대본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눈높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고, 당 지도부나 각계각층의 의견을 많이 들어 결정하겠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대위 구성이 되도록 할 생각이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안철수 원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경우에서든 국민의 삶을 내 정치의 중심에 두고 있다.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위해 내가 바꿀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또한, 안철수 원장에 대해서는 내가 답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분이 판단해서 할 문제다.

5·16이나 유신 문제의 시각이 다른 진보층을 아우를 방안은.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과는 중도다, 보수다, 진보인지를 따질 것 없이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야 한다. 현 정치권이 할 일이 산더미같이 있고 힘든 민생이 앞에 놓여 있는데 과거를 갖고 할 여유가 있는가.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꾸 과거로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한 입장은.
당이 받은 게 아니고 개인 간 금품수수에 의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데 그런 시비, 의혹이 생긴 것 자체만으로도 참 송구하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고 있고 결과에 따라 나중에 사과할 일 있으면 정중하게 사과드리겠다.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돼 있는데.
일본에서 역사 인식을 바르게 갖도록 촉구하고 노력을 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글 _ 강해인 기자 hikang@kyeonggi.com



향보 대선행보는?
불통 우려 불식 ‘대통합 깃발’
야권 후보 비해 상대적 약세 수도권·중도층·20~40대 집중 공략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통합’ 행보는 어떻게 진행될까?

8월 20일 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박 후보는 ‘원칙과 소신’이 강점이지만 일부에서는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후보 경선기간 동안 김문수 지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경선 주자들 뿐만 아니라 캠프 일각에서도 박 후보가 변해야 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발언과 공천헌금 파문에 임하는 박 후보의 자세 등이 보여준 답답한 이미지는 2030세대 젊은층 뿐만 아니라 4050세대 중년층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나왔다.
특히, 박 후보의 대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선 룰이나 일정 등에서 비박 주자들의 주장을 크게 포용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번 경선과 전대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처럼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뒤 지지율이 오르는 것)를 불러오지 못한 것은 이 같은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박 후보가 변화의 모습을 통해 지지율을 더욱 끌어올리지 못하면 향후 야당 후보와의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대선후보 선출연설에서 ‘대통합’을 강조한 박 후보는 이를 감안, 당선된 다음날인 8월 21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대통합 행보를 시작했다. 특히 봉하마을을 전격 방문,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이어 8월 22일에는 상도동과 동교동을 각각 방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각각 예방한 뒤  24일에는 김 지사 등 비박(비 박근혜) 경선주자 4명과 오찬회동을 하면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3일에는 대학생 총학생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반값 등록금 실현’ 약속을 강조했으며, 26일에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홍익대 일대를 방문해 2030세대와의 스킨십을 시도했다.

이 같은 행보는 취약점으로 부각되는 수도권·중도층, 20~40대와 호흡하는 ‘소통의 정치’의 일환이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진정성이 얼마나 뒷받침되느냐에 있다.

박 후보는 ‘수도권과 2040세대에 대한 외연확대’에 대해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고, 많이 만나고, 얘기도 많이 듣고 하면 그분들한테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 관계자는 “박 후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이 체감하기 위해서는 더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 _ 김재민 기자 jm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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