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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장] 작가 황정은

고민을, 사랑을, 삶을… 단념하지 않고 ‘계속해보겠습니다’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노출승인 2014년 11월 11일 14:25     발행일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제18면
   
 

황정은(38) 작가는 한글을 일찍 뗐다.

기억하는 최초의 단어가 ‘파도’였다고 말할 정도로 문자감각이 뛰어났던 작가는 어린시절,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줄줄줄 외웠다고 한다.

언어에는 능했던 작가는 한 때 말을 ‘안’하고 살아봤고, ‘못’하고도 살아봤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말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그가 지금은 특유의 단정하고도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한국문단과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로 살고 있다.

거기다 낯가림 심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데 인터넷 문학 라디오 ‘문장의 소리’ DJ부터, 현재 창비라디오 ‘라디오 책다방’까지 진행하고 있다.

적합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 풍’이라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인, 그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그의 소설에 대해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 황정은을 읽지 않는다면 처연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이처럼 세상에 발붙인 이후 읽고, 쓰고를 계속해온 황정은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刊)를 펴냈다.

지난 5일 서울에서 만난 황정은 작가는 “처음으로 책이 나와서 반가웠다”며 신작에 대한 애정을 덤덤하게 표현했다.

이번 소설은 2012년 가을호부터 2013년 여름호까지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1년 동안 개고를 거치면서 제목도, 결말도 바뀌었다.
 

   
 

작품은 ‘소라’, ‘나나’, ‘나기’ 세사람의 목소리가 각 장을 이루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같은 시간, 한공간에 존재하는 세사람의 서로 다른 감정의 진술을 각각의 온도로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작업현장에서 사고로 죽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활동을 시시때때로 정지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소라를 망가뜨리고 나나를 망가뜨리”며, 인생의 본질이 허망한 것이라고 세뇌하듯 이야기하는 어머니 ‘애자’의 곁에서 소라와 나나 자매는 관계와 사랑, 모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자라난다.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멸종하기를 꿈꾸는 소라와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랑을 경계하는 나나. 그 차갑지만 질서정연하던 세계에 모든 것을 흐트러뜨릴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나나의 ‘임신’. 사랑을 미워해도 사랑은 사랑으로 다가오기를 멈추지 않은 결과였다.

소라는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애자는 없는 게 좋다.’며 나나의 임신이 못마땅하다. 나나는 연이은 태몽과 자신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심장박동를 듣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한다.

이 둘의 바깥에서 세 번째 점이 되어 면적을 만들고 지질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화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빈한한 반지하 셋방 옆집에 살면서 같이 성장했던 이웃집 오빠, ‘나기’와 이들 자매의 도시락을 싸주면서 거둬먹인 ‘순자아주머니’다.

불쾌하고 사랑스러운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황폐하고 처절한 폭력의 세계를 그려낸 장편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이은 ‘폭력의 안과 밖’을 주제로 한 2부작에 해당된다.

“이 소설은 ‘세계의 끔찍함에 갇혀버린 인간에게 바깥이, 다른 세계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소설들이고 그 첫 번째가 ‘야만적인 앨리스씨’, 두 번째가 ‘계속해보겠습니다’다. 전작과 고민은 같지만 뉘앙스는 다른 소설을 쓰고 싶었다. 앨리스씨는 자기가 알던 세계 外로 나가는 데 실패했지만 이번 작품의 화자들은 다를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다.”

나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이 소설의 제목과 같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인 “계속해보겠습니다”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의지를 담아 꾹꾹 눌러 천천히 곱씹듯 말하는 것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보겠노라고, 사랑해보겠노라고.

소설 마지막 소라는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말하고, 나나는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소라, 나나, 나기, 그리고 2014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고 또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버텨가고 있다.

황정은 작가는 “굳이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단념하지 않고 고민을, 사랑을, 삶을 계속해보는 거다.”라고 말함으로써 “어쨌든 태어난 인간에게는 세계가 주어지는데 지금은 그 세계가 상당히 형편없고 망가져 있다”지만서도 소라, 나나, 나기처럼 본인도 계속해보겠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소설에 대한, 소설 속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한 작가는 이 책에서도 작가의 말, 해설, 책날개 약력을 넣지 않았다.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선 불친절하다 오해할 수 있다. 허나, 그의 작품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결코 불편하거나, 차갑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쓰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소설을 기껍게, 즐겁게 쓰고 있다. 디스크가 나가도.”

2013년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이어 2014년 ‘계속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3부작에선 그 간명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의 점층과 뛰어난 언어 조탁력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기대된다. 값 1만2천원

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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