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심신 달래주고… 이웃주민 갈등 없애는 ‘초록빛 마법’
지친 심신 달래주고… 이웃주민 갈등 없애는 ‘초록빛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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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정원, 텃밭이야기
▲ 최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도심속 텃밭을 가꾸는 도시텃밭이 각광을 받고 있다. 수원 구운 삼환아파트 마을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내 빈 공간을 활용해 각종 채소를 기르는 등 도시텃밭을 일구고 있다.  추상철기자

급격한 산업발달로 과거에 비해 먹고 살기 좋아졌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도시에서의 삶은 편리하고, 안정된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서 취업, 비싼 전세값, 노후 문제 등은 사람들을 옥죈다. 치열한 경쟁은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현상으로 몇 년 전부터 귀농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높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딱딱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삶을 꿈꿨다. 물론 이마저도 일부에게만 허락된 여유일 뿐이다. 귀농마저 하지 못한 도시인들에게도 희망의 빛줄기가 내리쬐고 있다.

도시에서 자신만의 텃밭을 가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다.
 
■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주민 소통공간 ‘텃밭’
지난 16일 오전 10시, 수원시 구운동 삼환아파트. 단지를 따라 쭉 들어가니 아파트 끝에 비교적 넓은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2~3평 남짓한 크기로 나누어진 40여개의 밭에는 상추, 고추, 가지 등 다양한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그 옆 좀 더 넓은 공간에는 어여뿐 꽃들과 허브정원이 가꿔져 있었다.

잠시 뒤 연세 지긋한 60~70대 어르신부터 40~50대 주부, 30대 새댁까지 텃밭의 주인인 아파트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했던 아파트 구석 유휴 공간은 어느새 주민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가득찼다.

이날은 수원시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공동주택 생활원예 및 치유텃밭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 화분과 작물을 가꾸고 있는 수원 구운동 삼환아파트 주민들

이는 아파트 한켠에 마련된 텃밭에서 전문농업인이 현장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텃밭가꾸는 방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4개의 공동주택 단지에서 본격 진행하고 있다. 텃밭 공간은 아파트 입주민이 마련했다.

사용하지 않는 땅에 흙을 메웠다. 강사와 텃밭 교육 재료는 수원시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했다.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동안 강의가 진행됐다. 앞선 아홉 차례의 강의에서 주민들은 각자 분양받은 텃밭의 계획을 세우고, 심을 작물에 대한 공부를 마쳤다.

이날은 관엽식물을 화분에 심어보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주민들은 편안하게 둘러앉아 서로 집안 이야기, 자식 이야기를 나누며 화분에 흙을 담고, 관엽식물을 심었다. 강사도 진지하고 딱딱하게 강의를 진행하기보다는 주민들 가까이 서서 직접 지도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하는 데 힘썼다.
 

▲ 화분과 작물을 가꾸고 있는 수원 구운동 삼환아파트 주민들

그렇게 텃밭은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이웃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다툼이나 갈등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참여주민들은 텃밭 가꾸는 데 필요한 물 사용료 400~500원을 자발적으로 내며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주민들은 분양받은 개인 텃밭 외에도 옆에 마련된 공동 텃밭 관리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햇빛이 따가울 만했지만 잡초를 제거하고, 일일이 물을 주는 등 애정을 듬뿍 쏟았다.

2시간 동안의 강의는 모두 끝이 났지만 주민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식 돌보듯 텃밭을 다시 둘러보고, 일부 주민들은 옆에 마련된 그늘진 쉼터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 교육은 수확이다. 직접 재배한 채소들을 포장해 지역의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이웃 등 소외계층에 전달한다. 키워서 먹는 재미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눔으로 이어지는 농업체험활동은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진다.

■ 아이들에겐 생명의 소중함 깨닫는 교육의 장
어른에게만 텃밭이 유용한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텃밭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다. 선생님이자 친구다. 용인 기흥에 위치한 한일초등학교는 올해 만 9년째 학교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규모도 제법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 학교 600여 명의 전교생 모두가 ‘어린 농부’다. 각자 자신만의 텃밭과 화분 하나를 가지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체감하며 ‘생태(生態)’와 자연스레 포개진다. 그 때문인지 아이들의 표정에도, 행동에도 ‘새싹’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용인 한일초의 텃밭은 두 구역으로 나뉜다. 1층 화단과 옥상 텃밭. 1층은 1~3학년 학생들의 공간이다. 모두 93개의 상자 텃밭이 이 곳에 설치돼 있다. 공간이 협소한 상자텃밭인 만큼 재배되는 작물도 아이들처럼 작고 귀엽다. 애기 고추부터, 방울토마토, 상추, 콩까지. 하나같이 아기자기한 식물들로 가득하다.
 

▲ 자신들이 직접 만든 ‘상자텃밭’을 관리하고 있는 용인 한일초등학교 학생들

이에 반해 옥상텃밭은 크다. 옥상 500㎡를 텃밭으로 개조했다. 이모작이 가능할 정도다. 작물도 다양하다. 옥수수와 대파, 오이, 얼갈이배추, 양상추. 작은 농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이다.

교육은 선생님이 직접 한다. 교사 9명으로 구성된 작목반을 중심으로 선생님 한분 한분이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을 갖췄다. 밭갈이부터 씨뿌리기, 솎아내기, 거름주기, 수확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한다.

학교 텃밭을 총괄하는 이상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텃밭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공간”이라고 단언한다. 식물의 생장에서 관찰되고 목격되는 그 모든 과정이 아이들의 정서와 인성은 물론 창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음식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다. 이상호 선생님은 “자신이 기르고 수확한 채소를 직접 요리해 먹기 때문에 편식습관을 교정하는 데 효과가 크다”며 나아가 “텃밭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스스로 깨치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가는 데 이만한 현장교육이 없다”고 말했다.

텃밭을 통한 전인교육(全人敎育)으로, 한일초는 올해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주최한 ‘제2회 도시텃밭대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도 아이들도,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박광수신지원기자

 

최용범 자연누리텃밭정원 협동조합 대표
“작은 화분 하나만 가꿔도 행복… 시작하는 게 중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화분 하나만 가꿔도 의미는 상당합니다. 어렵지도 않아요.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다 배울 수 있어요.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용범(46) 자연누리텃밭정원 협동조합 대표는 농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도시농업 전문가다. 그는 작더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에서 농학과를 전공하고, 종자생산, 종자관리, 해외 채종 등 농업 관련 일을 하면서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다. 실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1천여평의 농장에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다.

“체험장만 오면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져요.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나 학원의 시스템에 피로해진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평소 접하기 힘든 자연과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최 대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각박한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느라 지친 성인들에게도 ‘텃밭’은 힐링의 한 방법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텃밭’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집 안에 작은 화분 하나만 들여도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실제 정원이나 텃밭 가꾸기가 우울감과 심리적 위축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학술 자료도 나와 있어요. 힘겨운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식물을 가꾸며 쉬다보면 마음의 여유도 생길 거라고 확신합니다.”

신지원기자

 

도시농업인 백순자씨
“작물에 물주고 잡초 제거, 외로울 틈이 없어요”

“요즘은 정말 살맛납니다. 심은 작물에 물주고, 잡초 제거하고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어요.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도시텃밭’에 이제 갓 발을 들인 백순자 씨(55ㆍ여)의 말이다. 그는 올해 4월 시작한 ‘초보 도시농업인’이다. 백 씨는 4년 전 통장을 맡으면서 아파트를 쾌적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일들은 많이 해왔지만 정작 자신이 즐거워지는 일들은 없었다.

마침 통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텃밭을 가꾸던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텃밭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아파트 입주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아파트 내에 방치돼 있던 땅을 흙으로 메우고, 추첨을 통해 선정된 34명의 주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원시농업기술센터가 진행하고 있던 생활원예활동과 텃밭 가꾸기 프로그램 지원도 받게 되면서 텃밭 활동에 힘이 더해졌다.

물론 텃밭 가꾸는 일이 쉽진 않다. 시간이 될 때마다 나와서 관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안정된다. 주민들과의 관계도 더 끈끈해졌다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결실이다. 평소 모르고 지내던 주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수확물을 나누면서 교류가 활발해졌다.

“최근 문제가 됐던 ‘층간소음’ 분쟁은 다른 나라 이야기예요.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겨 갈등이 전혀 없어요. 중년에 찾아오는 우울증도 저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외로울 틈이 없거든요.”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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