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18. 동화작가로 ‘제 2인생’ 최금왕 씨
[언제나 청춘] 18. 동화작가로 ‘제 2인생’ 최금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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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우리딸 고맙고 사랑해… 동화작가로 행복을 펼쳐요”
▲ 천방지축 건강하게 뛰어노는 힘찬이와 그런 동생을 생각하는 자폐아 누나의 애잔함이 인상적으로 그려진 최금왕씨의 동화집 ‘구름똥’ 삽화.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자폐아이의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일상에서 이웃간의 잔잔한 사랑을 동화로 그려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렇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간단하고 쉬운 문구로 아이의 맑은 영혼을 충분히 끌어냈다.

창작동화집 ‘구름똥’을 쓴 동화작가 최금왕씨(58ㆍ부천어린이집 원장) 이야기다. 동화 속 ‘애잔이’에는 최씨의 딸 백가영씨(29ㆍ자폐성 장애1급)의 모습이 담겨있다.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각박한 현실과 바쁜 일상생활의 현대인들이 오히려 애잔이에게 삶의 여유를 배우게 된다.

동화 속 애잔이는 실밥 터진 곰인형에서 새어나온 변기 속 물에 뜬 솜이 구름을 닮아 ‘구름똥’이라 부른다. 말 못하는 인형도 생명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애잔이는 길을 걷다 누군가와 부딪혀 다쳐도 자기 것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상처에 슬퍼한다.

그런 애잔이네처럼 맑고 밝은 집에서 이 동화처럼 살고 싶어 노력해 온 최금왕씨 가족은 이번에 귀촌을 결심했다.

동화작가로 제2의 인생을 연 최금왕씨와 함께 남편 백광흥씨(58)도 30년간 근속한 글로벌 굴지기업인 한국IBM을 지난 3월에 조기 명예퇴직, 제2의 인생에 도전장을 던졌다.

■사회적인 성공보다 가족선택, “가정에서 성공했다”
최금왕씨 가족은 가영이와 남편이 등산을 좋아해 선택한 충북 단양에서 새둥지를 튼다. 이 결정엔 남편 백광흥씨의 결심이 가장 컸다.

백씨는 대학 졸업 후 1985년 한국IBM에 입사했다. 또래인 아내 최씨와는 1977년 대학 1학년 때 부천의 한 야학에서 교사로서 첫 인연을 맺었다. 9년이 지난 1986년,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최씨는 부천의 한 성당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 중에 직장생활 1년차인 백씨와 퇴근길에 우연히 재회했다.

두 사람은 3번째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백씨에 따르면 연인관계도 아니었지만 9년 전에 헤어진 사이 같지 않았고, 헤어지기 싫어 결혼하자고 했을 만큼 최씨를 마음에 뒀다.

그해 결혼 후 가영이가 태어났고, 백씨는 당시 최고경영자를 꿈꾸며 밤낮없이 일했다.

최금왕씨는 “남편의 퇴근시간은 늘 새벽 1시를 넘겼고 업무에 항상 피곤한 모습이었다”며 “그래도 힘든 기색없이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었고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성실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영이가 3살로 접어들 무렵 당시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최씨의 친구가 집에 놀러와 아이의 행동에서 자폐성향을 발견했다. 믿고 싶지 않았으나 검사 결과 사실이었다.
 

▲ 최금왕씨 가족은 현재 시어머니와 남편, 가영이, 막내아들 등 5명이 함께 산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던 최씨는 원형탈모를 시작으로 머리가 다 빠져 스카프를 쓰고 다녔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 가고 있음을 보고 남편의 고민이 시작됐다.

남편은 가영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부서를 선택했다. 승승장구 승진할 수 있는 부서 대신 오후 6시면 칼퇴근할 수 있는 부서로 옮긴 것이다. 단 최고경영자로 갈 수 있는 진급 진로는 포기해야만 했다.

최씨는 “훗날 동료직원들이 고속 진급하는 모습을 지켜본 남편이 10년 전 어느 날 술에 많이 취해 ‘나도 성공하고 싶었다’라는 말을 지나치듯 했고, 난 그 말에 한참을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남편의 성공길에 발목을 잡았다는 죄책감이 밀려왔었다”며 “그런데도 남편은 내가 서운할만한 말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오히려 나에게 미안해하며 배려하고 가족에 헌신한다”고 설명했다.

■자폐장애 딸 덕에 경험한 고마움
세상과 현실에 대한 증오를 오기와 긍적적 마인드로 바꾸어 준 건 가영이었다.

가영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자주 다닌 국내외여행에 늘 가족이 함께했고, 그 덕에 새보금자리도 찾았다.

최금왕씨는 “처음부터 선호한 지리산도 좋았으나 남편과 난 단양의 산을 선택했다. 유난히 가영이를 예뻐해 주던 돌아가신 오빠와 단양여행의 추억, 그 때(20년 전) 인연이 된 단양을 잊지 못했고 가족과 자주 이곳 소백산, 월악산 등을 다녔다”며 “가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외식, 여행비를 위해 가정주부에서 일(유치원 교사)을 다시 시작했고, 10년 전에 동화작가모임(복사골문학회)에서 만난 옛 은사님으로부터 어린이집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8월 교황이 방한했을 땐 가영이를 잘 아는 수녀님들의 추천으로 초대받아 맨 앞자리에서 교황과 마주보고 미사를 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최씨는 “남편은 가영이의 사회복지시설 계약기간(5년)이 후년(2017년 1월)에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단양으로 옮기기 위해 명퇴를 서둘렀다”며 “내년에 집을 짓고, 내후년엔 그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집은 지인들이 오갈 수 있는 맞춤형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짓는다. 남편은 가족건강과 찾아올 지인들을 위한 요리삼매경에 빠져있다. 가영이의 독립적 생활을 돕기 위해 별도로 예쁜 집을 지을 예정이다.

■가영이를 위한 특별한 환갑잔치 ‘우리 부부 손으로’
남편 백광흥씨는 제2의 인생 목표를 명퇴 이전부터 세워뒀다고 한다. ‘백수(白手)로 백수(百壽)까지 산다’는 것. 가영이가 환갑될 때까지다.

백씨는 가영이에겐 자손이 없으니 인생에서 크게 경하해야 할 예순나이까지 아이가 사는 것을 보고 갈 수 있도록 공기좋은 시골에서 부부가 100살까지 살고 싶다고 한다.
 

▲ 최금왕씨와 딸 가영이(초등학교 시절)

최씨 부부는 아들에게 “‘혹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누나 걱정 말고, 결혼하면 네 가정에 충실하고,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이미 준비해 놓았으니)누나한테는 살면서 가끔 생각나고 시간 날 때 찾아가라’고 하자 아들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누나는 제 몫인거 제가 잘 알고 있으니 염려마세요’라고 했다. 짠하더라”고 말했다.

최금왕씨의 동화책 ‘구름똥’에 등장한 이름(누나 애잔이, 동생 힘찬이, 엄마 아빠, 친구인 수진이와 창호, 강아지, 금붕어, 신부님 등)은 그 대상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그 인물에 대한 바람의 표현이라고 한다. 최씨의 그 바람은 실제로 충북 단양의 한 시골마을에서 현실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는 “그간 여러 차례 저희 가족에 대한 언론사들의 취재 문의가 많았으나 일언에 거절했다”며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이번에 처음 세상에 공개되는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폐장애 가족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백씨를 대신해 말했다.

남편의 인생 2막에 앞서 최씨 자신도 작년부터 동화작가로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최씨의 처녀작인 ‘구름똥’ 동화책은 지난해 2월에 초판이 나왔다. 지난달엔 재판이, 이달엔 전자책(e-Book)이 출간된다.

부천=최대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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