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속으로 파고든 예술… ‘문화재생’ 변화의 물결 출렁
지역속으로 파고든 예술… ‘문화재생’ 변화의 물결 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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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시재생, 문화로!] 4. 황금산 프로젝트

▲ 예술선감 박준식 배 띄워라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의 선감도. 속세를 떠나 구름과 학을 벗삼아 지내던 사람이 내려와 맑은 정한수로 목욕했다 하여 선감도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지명과 달리 선감도의 역사는 아프고 또 아프다. 일제강점기에 탈출하기 어려운 섬 선감도에 선감학원을 세운 후 어린 소년들을 수용해 노동을 강요하고 때리고 굶기는 등 세계 최대 청소년 인권유린 현장으로 기록된 탓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감마을 사람들이 이 아픈 역사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선감학원 건물이 예술가들이 입주해 창작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레지던시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센터장 서정문)’로 변신한 것이 그 첫 번째 파도였다.

수 년 후 이 거점을 토대로 개인 작업만 벌이던 작가들이 지역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눈을 돌려 고민하기 시작했고 ‘봄날예술인협동조합’이 출범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경기창작센터와 봄날예술인협동조합이 선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변화를 일궈가고 있다. 낙후된 한 마을에 공간적 거점과 주체가 생성된 후 이를 토대로 해당 지역에 새로운 가치가 환원되는 선순환구조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경기창작센터와 봄날예술인협동조합의 탄생과 만남
전국에 200여 곳, 수도권에만 5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될 만큼 ‘레지던시(예술가 창작스튜디오, Residence ) 붐’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레지던시 전쟁이라고까지 칭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 기인한다. 농촌사회에서 산업화,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면서 전국에 폐교와 폐건물 등이 늘었고 정부과 공공기관은 이를 예술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시행했다.

1995년 ‘청원마동창작마을’(충북 청원군 회서분교)을 시작으로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수 많은 창작스튜디오가 탄생했고 시설 노후에 따른 비용, 운영 전문 인력 부족, 예술가들의 경제적 문제 등으로 명색만 유지하거나 소멸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09년 10월 경기창작센터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문을 열었다. 선감학원에서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로 사용했던 부지와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5만4천545m², 건물면적 1만6천225m²에 달하는 총 7개 동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각각 작가별 작업실, 전시실, 창고, 공방, 숙소 등으로 활용 중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과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로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예술가를 입주 작가로 선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창작욕을 돋우기 위한 워크숍, 전문가 어드바이징, 강좌, 기획전과 공연,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이에 입주 작가 29명을 선발한 올해에는 55개국의 468명이 지원해 평균 1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외진 선감도에 자리잡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들이 해당 지역에 적응 또는 특유의 문화를 접목해 창작활동을 벌일 시간이나 통로가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입주 기간이 짧게는 3개월, 길어도 1~2년인 상황에서 예술가들과 지역과의 교감이 이뤄지지 않으니 경기창작센터와 입주 작가들만의 새로운 창작물을 기대키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난 2013년 ‘봄날예술인협동조합’이 탄생한 이유다.

“입주작가 대부분은 작업실에만 있다 보니 지역을 잘 모르고 나가버리면 끝인, 너무 소비적이었다. 레지던시 공간으로서의 역할이나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에게도 문제였다. 입주 작가들을 주축으로 협동조합을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대부도 나아가 안산 등으로 확장해 지역에서 펼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있다.”(봄날예술인협동조합 대표 정기현)

봄날은 전국적으로 드문 예술인 협동조합으로 지난해 세월호 사건 당시 안산 단원고등학교에 가서 무료로 벽화 작업을 벌이는 등 경기창작센터가 자리한 안산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 문화 재생 활동을 기획, 추진 중이다.

▲ 황금산 부엉이와 경기창작센터
지역으로 스며들지 않은 예술은 쓰레기
창작센터와 봄날은 지난해 4월부터 선감마을 곳곳에서 ‘황금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프로젝트 명칭인 황금산은 대부도를 상징하는 산이었다. 황금이 매장돼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지만, 현재는 폐광된 상태다.

잊혀진 공간인 셈이다. 창작센터와 봄날은 이 상징성, 즉 지역의 가리워진 이야기를 다시 불러내 적극적으로 치유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 지역의 재생을 함께 꿈꾸기로 했다.

봄날의 대표인 정기현 작가를 예술감독으로 앞세우고 창작센터가 지원협력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구체화한 계획을 수립, 기관협력을 조건으로 내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재생+예술’ 공모사업에 지원했다. 지원서류를 쓰기까지 지역 리서치와 주민 인터뷰,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대부도는 난개발이 심각하다. 때문에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방치된 땅과 건물이 흉물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창작센터 입주작가들이 예술작품을 설치하며 전복을 꾀했지만 오히려 쓰레기가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예술가들이 진짜 작품다운 작품을 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모두 함께 1년 동안 광범위하게 지역을 조사하고 계획을 세웠다.”(참여 작가 박준식)

황금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현재 대부도는 ‘바다봬 수목원’, ‘갯벌자원연구센터’, ‘말 테마단지’ 등이 조성 중으로 곳곳에서 개발이 한창이다. 주민들의 머릿 속에는 개발 후 관광산업이 활성화된 분홍빛 꿈이 펼쳐지고 있지만, 그 때문에 방치된 현실은 암울하다는 것이 입주작가들의 시선이었다. 

이에 황금산 프로젝트는 훼손되고 버려진 해양 생태환경에 예술적 에너지를 접목하는 ‘예술선감’과 지역 주민들에게 창조의 씨앗을 파종하는 ‘아지타트’ 두 개의 테마로 구성했다.

이 중 버려진 습지에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해 예술 생태 공원화하는 ‘예술선감’은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탐방 관광 코스로 한 몫 하고 있다. 

창작센터 건물 위에 앉아있는 이윤기 작가의 <황금산 부엉이>, 수면 위아래 맞닿은 한자가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윤형민 작가의 <天上天下>, 섬마을 사람들에게 익숙한 통발로 완성한 미로 같은 조형물인 정승원 작가의 <프롬나드>, 버려진 폐선을 쉼터로 조성한 박준식 작가의 <배 띄워라> 등을 설치했다. 

‘아지타트’는 주민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마을 공동체에 스며들어 그들 스스로의 변화를 꾀하는 프로그램으로 꾸렸다.

예술가들이 주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책으로 제작하는 자우녕 작가의 <무지개빛 대부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칠보공예를 가르쳐 예술적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원보희 작가의 <칠보공예-빛을 그리다>, 주민을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려 연극을 상연한 김태린 작가의 <셰익스피어, 선감도에 오다> 등이다. 

젊은 시절 배우가 꿈이었지만 농부로 살아온 문기식(81) 할아버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됐다. 

한 프로젝트 속 두 갈래의 방향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지역과 예술가의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아지타트 자우녕 무지개빛 대부도
정 예술감독은 “문화재생은 지역에 스며들지 않으면 쓰레기, 폐물이 된다”면서 “소통 없는 작품은 작가의 배설이고 주민에겐 쓰레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민관 협력 체계와 이들이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영감받는 이 선순환 구조가 앞으로 부딪히는 장애물과 버티어 내는 과정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정문 창작센터장은 “지역에서 예술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면서 “앞으로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감동이 살아 숨쉬는 예술섬으로 탈바꿈, 에코뮤지엄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 또 어떻게 용도가 바뀔 지 모르는 땅 위에 작품을 세우고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 예술가들은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방침이다.

든든한 거점인 창작센터가 있고, 예술가들이 능동적으로 나서고, 이제 마음을 나누며 지역 재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주민들이 함께하는 한 기존에 소멸된 레지던시나 흉물이 된 문화재생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케 한다.

류설아기자
후원 :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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