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문명 전환 거점을 가다] 과거로 떠난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
[경기천년 문명 전환 거점을 가다] 과거로 떠난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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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지혜를 따라 미래의 길을 열다


인류는 신석기 농업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쳐 새로운 문명 전환기에 서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문명사회를 조성할 것으로 예측한다. 

고려 현종 8년(1018)에 ‘경기’라는 이름으로 한국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경기도는 오는 2018년 새천년을 맞이한다. 

이에 경기학회와 경기일보는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을 꾸려 지난 7~8일 도내 문명 전환기 주요 거점과 인물 등을 찾아가봤다.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와 한국인의 시작점, 연천 전곡 선사 유적
“경기도 연천 전곡 선사 유적지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트린 전환점이다.”

지난 7일 오전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기도 연천의 전곡선사 박물관

이다. 이날 탐사단을 구석기시대로 이끈 전곡선사박물관 김소영 학예연구사는 경기도의 구석기 시대 유적ㆍ유물의 위상과 의미를 이같이 강조했다.
▲ 경기천년문명탐사단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에 대한 김소영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선사시대. 그만큼 그 시대의 유적과 유물의 가치는 높다.

경기도에는 선사시대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와 하남 미사동의 신석기시대 유적, 그리고 여주 흔암리의 청동기시대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한탄강변에서 미군 병사가 구석기시대 석기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2011년까지 17회의 발굴조사를 시행,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등의 다양한 석기가 나왔다.

▲ 한국 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성호 이익 관련 유물과 기록을 소개하는 안산시 소재 기념관
특히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기존의 인류사를 뒤흔들었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돌을 칼처럼 날카로운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형태로 돌의 양쪽을 떼어낸 것으로, 고대 인류의 지능을 입증하는 유물이다.

연천군 전곡리 유적에서 해당 주먹도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이에 서양의 학자들은 그것이 곧 동서양 인종의 근본적 차이를 방증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연천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로 그 주장은 힘을 잃었고 세계 구석기시대와 주먹도끼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경기도는 이같은 전곡리유적과 유물을 보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전곡선사박물관을 건립, 현재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 중이다.

이번 탐사단원으로 참여한 경기대학교 조미아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경기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세계사의 중요한 유적과 유물을 책이 아니라 생생하게 보고 체험할 수 있어 감동적”이라며 “도와 교육계, 문화계 등이 이처럼 훌륭한 자산을 미래 세대가 경험함으로써 도민이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성호기념관 내부 전시물.

◇한반도 최초의 재배벼, 고양 가와지 볍씨
경기도의 구석기를 뒤로 하고 도착한 시간여행지는 신석기시대 농경문화를 보여주는 고양가와지볍씨 박물관이다. 가와지볍씨의 존재와 그 의미를 처음 알게된 탐사단원 모두 감탄하며 전시물을 둘러봤다.

이처럼 탐사단을 이구동성 놀라게 만든 가와지볍씨는 1991년 고양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됐다. 미국 베타연구소가 연대 측정한 결과 당시 5020년 전의 볍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반도 벼농사의 시작은 청동기시대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가와지볍씨로 훨씬 이전인 신석기시대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가와지볍씨에는 인위적인 재배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고양시가 한반도 농경 문화를 선도하는 거점으로 주목받게 됐다.
▲ 전란의 흔적을 간직한 초지진

고양시농업기술센터 소재식 도시농업팀장은 “가와지 볍씨는 인간이 만든 최초의 혁명인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 그 중에서도 고양시에서 재배가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획기적 자료”라면서 “또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 우수한 농경문화를 전수했음을 보여주는 대단한 의미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학교 신용하 명예교수는 “가와지볍씨로 인한 농경문화의 시작이 고조선 건국과 고조선 문명의 사회 경제적 기초가 확립된 것”으로 평한 바 있다.

◇화려한 고려 문명의 발신지이자 조선시대 전란의 상처, 강화도
탐사단의 다음 목적지는 경기도를 벗어나 인천광역시 강화군이었다. 여기서 고려의 국제항 벽란도를 볼 수 있는 강화 평화전망대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구축한 요새 초지진을 밟았다.

▲ 경기천년문명탐사단이 가와지 볍씨 박물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중 벽란도를 망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강화 평화전망대에 들른 것은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문화가 활짝 피었던 고려시대 개방성의 상징을 바라보며 개방 사회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벽란도는 과거 경기도 개성군 서면에 속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벽란도에 얽힌 역사와 가치를 설명하던 궁궐문화원 황금희 원장은 “경기문화에 고려 문화, 벽란도가 보여주는 개방성을 더한다면 더욱 역동적인 문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찾아간 초지진은 1870년대 미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적지다. 1875년 초지진 수비군이 일본 함정을 향해 포격을 개시, 이 때 일본 측 포격으로 일시에 파괴됐다.

1973년 남아있던 터와 성의 기초를 토대로 복원, 조선시대 대포와 함께 전시 중이다. 바로 옆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소나무가 문명 전환에 실패했을 때 참상을 보여준다.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한국 사상사의 변화를 이끈 성호 이익
구석기부터 시작한 탐사단의 시간여행은 안산시로 이동하면서 조선시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인물은 실학의 대종으로 추앙받는 성호 이익(1681~1763).

그는 안산에서 평생 학문에 힘써 성리학을 넘어 새로운 사상으로 이끈 대학자다. 그는 대표저서 <성호사설>에 서양의 세계지도와 지리서, 천문역법서 등을 담아내며 개방적 태도와 과학적 사유의 길을 열었다.

이에 대해 성호기념과 김규원 학예연구사는 “전통적 기준이 해체되고 서구의 신문명이 압도해 들어오는 상황에서 자기 시대를 돌파해 간 성호 이익은 문명 전환기를 맞이한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성호 이익 선생의 학문과 실학사상을 소개하는 전시실, 체험관, 영상관 등으로 구성된 성호기념관에서는 관련 유물 100여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미라


이번 경기문명탐사를 함께한 느티나무 인문학당 한덕택 대표는 “경기도에 이처럼 유의미한 거점과 역사, 인물 등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면서 “새천년을 준비하는 경기도가 이토록 가치있는 것을 적극 활용해 좀 더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진갑 경기학회장은 “문명 전환은 막을 수 없고 전망하기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진보를 가져왔다”면서 “문명 전환은 일정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미리 준비한다면 경기도가 과거 천년 동안 그래왔듯이 전환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이 과정에서 문명 전환이 폭력을 수반하지 않도록 경기 지역의 실학자와 서학자들이 보여준 지식과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천년문명탐사단은 오는 17~18일 남양주, 여주, 성남 등에서 제2차 일정을 진행한다.

▲ 전곡선사박물관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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