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천년보물] 분청사기 상감 ‘정통4년명’ 김명리 묘지
[천년경기 천년보물] 분청사기 상감 ‘정통4년명’ 김명리 묘지
  • 김영미
  • 승인 2018.03.22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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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색채 지닌 조선시대 유물

▲ 분청사기 상감‘정통4년명’ 김명리 묘지1
1989년 경기도 광주 광남동에 위치한 무덤을 이장하면서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 발견됐다. 바로 안동김씨 문온공파대종회에서 김명리(金明理: 1368.2~1438.12) 할아버지의 지석이다. 34㎝ 크기에 커다란 종형태의 분청사기 지석으로 전체적으로 흰글자가 빼곡이 쓰여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 도자기의 정식 이름은 ‘분청사기 상감‘정통4년명’ 김명리 묘지’로 묘의 주인인 조선시대 성천도호부 부사(成川都護府副使)를 지낸 김명리의 기록을 담고 있다. 묘지의 글은 무덤 주인공의 관직과 이름으로 시작한다. ‘조선국 봉정대부 성천도호부부사 겸 권농부사 안주좌익병마단련부사 김공 묘지’ 그리고 김명리의 가계·이력·성품·부인과 자녀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정통(正統) 4년 기미년(1439, 세종21) 겨울 10월 하순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류의손(柳義孫)이 삼가 짓다’라 하여 만든 시기를 밝히고 있다. 김명리가 1438년 12월 죽은 후 이듬해인 정통 4년(1439) 기미년 겨울 10월 하순이다. 지석의 바닥면에는 음각으로 ‘행자 학민(行者 學敏) 산직 단동(山直 丹同)’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전체 모양은 상부에서 저부로 내려오면서 직경이 약간 좁아지는 비대칭의 원통형이고 상면 중앙에 높이 4.0㎝의 연봉형(蓮峰形) 꼭지가 투각돼 있다. 묘지문은 몸체 전면에 걸쳐 백상감 기법으로 각서(刻書)하였다. 도자의 장식기법 중 바탕 흙과 다른 흰색 흙으로 무늬를 채워넣는 백상감기법을 이용해 글을 남기고 있다.

묘지란 죽은 사람의 구체적인 생애인 서(序)와 생애를 압축하여 적은 명(銘)으로 구성되며 지석, 광지, 묘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묘지는 중국 위(魏)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무덤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대신 두 장의 판석에 묘주의 기록을 새겨 묘광 앞에 묻도록 한 것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조선시대 상류층에서 유행했다. 고려시대 유교적 예교(禮敎)를 장려하면서 상ㆍ장례에 석제 판석의 묘지가 등장한다. 당시 귀족들의 장례절차는 대부분 불교의식에 따라 행해지고 여기에 묘지라는 유교적 매장 문화와 도교의 사상이 혼합됐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이념에 따라 성종 5년(1474)년 『국조오례의』를 완성하며 지석 2개를 만들어 누구의 묘인지, 묘주의 생애 등을 기록한 내용을 묻으라고 규정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숭유억불의 정책을 펼치지만, 유교적 규범이 완전히 자리잡기 전인 조선 15세기에는 여전히 불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지석들이 제작된다. ‘분청사기 종형’묘지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종형 묘지의 꼭대기에는 연봉우리가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연꽃은 고려시대 위패에 등장하던 장식요소로서 ‘연화세계’ 곧 ‘극락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자기로 만든 위패형 지석에 연꽃은 중심 문양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종형 묘지는 입체의 형태에 15세기 유행하던 ‘송설체’로 빼곡이 쓰여진 개인의 기록으로, 조선 초의 사료를 보완해주는 매우 귀한 자료이기도 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묘지 중 유일한 형태이다.

이 유물은 집안에서 귀중하게 보관하던 것이었으나, 2011년 박물관에 위탁되어 학술적 가치가 밝혀지고, 이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 이런 아름다운 사례는 문중의 이름을 빛낼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소중한 문화재로 보존되고 기록될 것이다. 지금 경기도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 가면 조선시대를 살았던 ‘김명리’할아버지의 생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김영미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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