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기, 천년보물] 성산이씨 장신구
[천년경기, 천년보물] 성산이씨 장신구
  • 전익환
  • 승인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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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이씨 장신구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청송심씨 심지원 묘와 파평윤씨 윤관 묘는 조선 영조 대부터 최근까지 400년간 묏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원(沈之源, 1593∼1662) 은 조선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고, 윤관(尹瓘, ?∼1111) 은 고려중기 문신이면서 여진족 토벌과 동북 9성을 쌓은 업적으로 역사교과서에 실린 인물이다.

2008년 청송심씨와 파평윤씨 문중간의 화해로 심지원 묘와 신도비를 이전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경기도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를 하게 되었다. 조사 대상은 심지원 묘와 신도비, 그의 할아버지 심종침 묘, 아버지 심설 묘 3기였지만, 이 이외에도 아들 심익창 등 후손 묘 여러 기도 이전 대상 이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한 가문의 묘제 양식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출토복식과 지석, 명기 등 다양한 유물을 수습하는 학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심익창의 부인인 성산이씨 무덤이다.

심익창의 첫 번째 부인인 성산이씨는 효종 2년(1651) 12월 24일에 태어났지만 이미 그녀의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다. 열네 살에 시집을 가서 겨우 스물한 살에 병을 얻어 사망하고 불행히 자녀마저 없었다.

안타까운 삶의 기록과는 달리 성산이씨 무덤에서는 금실로 짠 봉황무늬 치마, 진주로 장식된 주머니와 더불어 다량의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수습된 장신구는 옥 반지 2점, 은제 반지 2점, 가지장식노리개 1점, 용두장식노리개 1점, 머리장신구 2점, 비녀 1점이다.

장신구는 오랜 기간 땅 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장식된 진주와 산호가 녹아 없어지거나 투각된 옥의 일부가 파손되긴 했지만 원래의 모습을 추정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성산이씨 장신구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조선시대 장신구들과 비교해서 장식이나 조형면에서 화려하고 뛰어나다. 

특히 반지와 비녀는 궁중과의 관련성이 제기되는데, 은제 반지는 덕수궁에서 전해져 내려온 반지와 형태 및 장식기법 면에서 아주 흡사하고, 비녀머리 둘레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아름답게 꾸민 영락잠(瓔珞簪)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대소의식이나 특별한 날 왕비를 비롯하여 공주, 옹주가 예복에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심지원 일가는 심지원의 아들 심익현이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하여 청평위에 봉해짐으로써 왕실과의 연관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출토 장신구의 일부 혹은 대부분이 궁중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장신구의 대부분은 제작시기와 착용자가 알려진 예가 드문 편인데 성산이씨 출토품은 화유옹주(1740∼1777)묘 출토 장신구와 함께 정확한 시기와 착용자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들어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성산이씨 장신구의 연구조사를 통해 그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도록 복원작업을 시작하였다. 복원작업이 마무리 되면 사치를 금기시했던 조선시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여성들의 장식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박물관 전익환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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