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표=목숨
[지지대] 1표=목숨
  • 김종구 주필
  • 승인 2018.06.13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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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잉글랜드 엡섬의 경주로에 한 여성이 뛰어들었다. 곧바로 경주마로 돌진했다. 여성 참정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이었다. 하필 조지 5세의 애마, 앤머였다. 여성은 말에 짓밟혔다. 경찰이 신문으로 피를 막아 봤다. 하지만 출혈이 계속됐고 여성은 결국 숨졌다. 그의 외투 안쪽에서는 ‘여성사회정치 연합’이라고 쓴 깃발 두 개가 발견됐다. 남성들은 비웃었다. “말은 괜찮냐”고도 했다. 그에게 표는 곧 목숨이었다. ▶1916년. 미국 백악관 밖에 쇠사슬 시위대가 등장했다. 재선에 성공한 윌슨을 반대하는 행동이었다. 윌슨은 여성 참정권 반대론자였다. 시위대를 이끈 건 엘리스 폴(1885~1977)이었다. 백악관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당했다. 그러자 단식투쟁으로 권력에 맞섰다. 1913년 윌슨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여성 1만명 시위를 이끌었다. 결국, 1920년 미국의 여성 투표권이 생겼다. 그에게 표는 쇠사슬과 단식으로 싸운 투쟁이었다. ▶1990년 2월. 넬슨 만델라가 출소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을 복역했다. 그의 출소는 인종차별 종식을 의미했다. 350년을 지배해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변화였다. 1994년 4월 27일 역사적인 총선이 실시됐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저항이 여전히 살벌했다. 9천개 투표소에 10만명의 군경이 배치됐다. 그래도 흑인들은 새벽부터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하는 만델라 사진이 세계로 타전됐다. 그에게 표는 징역 27년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에는 선거로 뽑힌 여성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처음으로 투표장을 찾았다.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였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뒤 122년 만이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된 지 83년 만이다. 이 선거에서 20명의 여성 지방 의원들도 탄생했다. 이슬람권의 많은 국가들이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이들에게 표는 이슬람 여성계의 인권 상징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13 선거의 표 한 장 가격을 매겼다. 2천891만원이라고 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4년 예산 1천240조원을 유권자 수 4천300만여명으로 나눈 수치다. 비교의 설득력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만큼 한 표의 소중함을 설명하려는 선관위의 노력으로 보면 된다. 목숨과 바꿨던 에밀리 데이비슨, 쇠사슬과 단식으로 저항했던 엘리스 폴, 27년의 징역과 바꿨던 넬슨 만델라. 더 설명이 필요한가. 투표하러 가자.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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