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정 선배,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종구 칼럼] 정 선배, 고생 많으셨습니다
  • 김종구 주필
  • 승인 2018.06.19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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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시장ㆍ군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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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심재덕 시장이 낙선했습니다. 3선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낙선 시장들은 업무에서 손을 뗐습니다. 휴가도 갔고 출장도 갔습니다. 심 시장만 달랐습니다. 마무리를 하겠다며 직무실을 지켰습니다. 이미 비서실은 달라져 있었죠. 생기 잃은 직원들이 자리만 지켰습니다. 찾는 공무원들도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외부 손님도 거의 없었습니다. 복잡한 면담 신청도 더는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쑥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하려던 전국 화장실 투어 계획은 못 하는 거죠.” 선거 전에 계획했던 행사 얘기였습니다. 대답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건 해야지.” 그다음부터는 생생합니다. 실장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자전거 화장실 투어를 우리가 해야겠는데, 예산 500만원을 세웠으면 좋겠다. 내 마지막 지시라고 생각하고 해달라.” 화장실 문화에 각별했던 심 시장다웠습니다. 실장이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행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심 시장은 모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장실을 나서던 기자를 실장이 잡았습니다. 쪽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사정을 알잖냐. 지금 심 시장이 지시하는 예산을 어떻게 추진하겠나. 조용히 없던 일로 하자.” 그랬습니다. 심 시장의 ‘마지막 지시’는 믿었던 측근 실장에 의해 묻혔습니다.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퇴임 시장과 퇴임 시장을 보내는 공무원의 모습이었습니다. 대단히 역한 기억입니다.
정찬민 선배, 오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입니다. 쓰레기에서 종이 하나를 빼냈습니다. 용인시장 선거공보물입니다. 바닥에 펴 놓고 앞쪽을 봤습니다. ‘4년간 해냈다’는 면입니다. 경전철 빚 8천억 갚았고, 중ㆍ고교 무상교복 실시했고, 세브란스 병원 유치했고, 인덕원선에 흥덕역 넣었고, 임야 훼손 아파트 건립 막았고…. 참 많네요. ‘앞으로 하겠다’는 쪽은 안 봤습니다. 이제는 볼일이 없을 듯합니다. 다음 주에는 버릴 겁니다.
이런 통계 알고 계시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접수된 선거법 사건이 225건이랍니다. 이 중에 184건(257명)이 지금도 수사중이라고 하네요. 흑색선전, 금품 제공, 사전선거운동, 선거 폭력…참 많기도 합니다. 중한 것들도 있을 거고, 시답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겁니다. 빨리 끝내면 좋은데 또 질질 끌겠죠. 하나하나가 지역엔 후유증입니다. 1, 2%의 당선 무효를 위해 서로 지지고 볶을 겁니다. 아름다운 퇴장? 철없는 기대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놔 줘야 합니다. 지지자들부터 놔 줘야 합니다. 많은 후보들이 불복을 말합니다. 지지자들은 그 말에 붙들려 꼼짝도 못합니다. 관심 없는 데 있는 척해야 하고, 결과 뻔한데 기다리는 척해야 합니다. 정 선배는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들도 놔 줘야 합니다. 많은 시장들이 시정 마무리를 말합니다. 이때의 마무리는 후임자를 위한 비우기여야 합니다. 새로운 주군에 보내주는 배려여야 합니다. 정 선배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유독 많은 시장들이 떠납니다. 선거에 져서, 공천에 탈락해서, 연임 제한에 걸려서 떠납니다. 모두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안 되면 몇이라도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몇도 안 된다면 한 사람만이라도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그때 그 한 사람이 정 선배였으면 좋겠습니다. 16년 전 지방자치의 모습-‘심 시장’ 모습이 슬펐고 ‘실장’ 모습이 역했던-과 달라질 때가 됐습니다. 정 선배의 퇴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세상은 선배를 버릴 겁니다. 위로의 손길도 사라질 겁니다. 가까운 어느 날, 다시 혼자 돼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푸시킨이 이래서 그말을 했나 봅니다. 노여워하지 마세요. 슬퍼할 필요 없습니다. 텅 비었던 용인시 금고에 돈이 채워졌다면서요. 그만하면 큰 역사를 남긴 겁니다. 먹는 끼니보다 거르는 끼니가 많았던 가난한 집 아들이었는데, 이만하면 잘한 겁니다. 이제, 그 4년보다 더 소중한 열흘이 선배에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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