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예술은 슈츠다
[함께하는 인천] 예술은 슈츠다
  • 황태현
  • 승인 2018.06.28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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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모 방송국의 ‘슈츠’라는 드라마가 있다. 로펌의 변호사들의 일상을 담은 내용으로 흐트러짐이 없는 말쑥한 정장차림의 남자배우의 모습에서 옷이 지니는 상징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슈츠는 단순한 옷의 의미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던지는 신뢰를 기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돈된 모습은 의뢰인에게 사건처리 또한 빈틈이 없을 것 같은 믿음을 심어준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는다는 건 그 사람의 반영일 수도 있다.

슈츠(정장)는 소재, 디자인, 메이커에 따라 가격의 폭이 매우 큰 편이다. 특히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해외명품의 경우 고가에도 불구하고 메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명품백의 경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도 부유층들은 비용을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명품을 선호하고 가지려 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을 지니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가치를 사는 것인지 모른다. 그 가치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려고하는 허영의 심리와 맞닿은 결과로도 보인다. 명품브랜드의 경우 브랜드별 컨셉이 명확하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만큼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술의 본고장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명품들의 탄생배경으로 사회 전반적인 예술 인프라를 들 수 있다. 예술이 일부 특권층의 소유가 아닌 국민 대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감대의 형성은 예술가들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적 관심과 그것을 유도해낼 수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항구적 정책의 입안과 실천이 요구되어지기도 한다.

가시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정책은 불필요한 재원만 충당하고 결과는 미미한 전시행정에 불과할 뿐이다. 수많은 예술가를 보유한 나라들의 국격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유럽, 세계 2차대전 후 새로운 패권국가로 급부상한 미국, 최근의 신흥강국인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예술에 대한 관심과 예술가에 대한 투자와 육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본가의 지원 등은 분명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문화적 동물 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슈츠가 외형적 품격이라면 예술은 내면적 품격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나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미술인의 입장에서 자성의 시간 또한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최근에는 종래의 화랑전시를 벗어나 각종 아트페어, 온라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의 쏠림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 쏠림현상이 명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허영의 산물이건 분명 그들은 가치를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 스스로 마음을 명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고가의 옷을 구매할 때 까다롭게 체크하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적당한 관념미와 조형미로 명화로 인정되길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 할 수 있다.

황태현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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