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문화 돋보기] 비(非)유학파로 유럽 오페라에 진출 ‘테너 이현재’
[탁계석 문화 돋보기] 비(非)유학파로 유럽 오페라에 진출 ‘테너 이현재’
  • 탁계석
  • 승인 2018.07.10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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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가지 않을 수도 없고, 갔다 오면 자리가 없고”.

예술대학들의 문이 닫히면서 생긴 엄연한 오늘의 현실이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최근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상당한 위기를 몰고 올 것이란 불안감에 대학을 졸업한 예비유학도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고 학력 만능 사회에서 쉽게‘학력’을 빼고 개인이 도전하기란 포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많은 비용이 드는 수년씩의 유학을 어떻게해야 할까? 사실 우리의 기술력은국내파로서도 충분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나 반클라이번 콩쿨에 우승할 만큼 원천 기술은 인정을 받았다. 그렇지만 학력 시스템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異變(이변)이 생겼다. 돌파의 길이 열린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면서 스위스 바젤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오디션에 응시해 발탁된 테너 이현재(26살)다.

그러니까 유학을 가지 않은 순수 국내파로서 유럽극장에 진출한 것이니 유학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을 깬 것이다. 그는 한예종 성악과와 라벨라오페라학교에서 기량을 닦았다. 2013년 라벨라의 ’일 트로바토레‘의 루이즈역으로 데뷔했다. 그러는동안 국제적 권위의 콩쿠르인 오스트리아 린츠 국제오페라콩쿠르에서 3위, 국내 대구성악콩쿠르 대상,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 동상 등을 획득했다.

그는 오는 9월부터 현지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현재는 2013년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공군 패러디 영상인 ‘레 밀리터러블’에서 장발장역을 맡아 유튜브 580만뷰를 기록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가 유학 대신 극장 진출에 도전한 것은 그의 부친인 라벨라오페라단의 이강호단장의 정확한 목표와 설계가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이 단장은 ‘우리의 오페라 가수 진입이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오면 유럽 현지 가수들보다 4~5년쯤 늦어진다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국내 오페라계가 안타깝다’는 주장을 늘 해왔다.

따라서 이번 이현재 성악가의 진출이 예술의 기량보다 유학파, 비유학파를 엄격하게 가르는 국내 현실에서 숨통을 터주는 계기로 발전했으면 한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같은 물꼬가 시각을 열어 주는 것이어서 언젠가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오페라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성악가를 기르는 시스템이 없고, 다된 사람만 데려다 쓰고 관리조차 안되는 혼돈의 환경을 바꾸는 정책이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해 역량있는 민간오페라단에 의해 구축되었으면 한다.

사실 관객 입장에선 프로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특히 박사를 따느라 엄청난 고생과 시간을 보낸 입장에서 현장이 변화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앞으로는 ‘대학’이 선호가 아니라 ‘프로’가 무대의 증심이 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학만 다녀 오면 교수가 되었던 70~80년대가 아니다. 박사들로 수십개의 대학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강사 줄 잘못 섰다가 안풀리면 인생이 허비되고 말았다는 주변의 상황은 山之石(타산지석)이 되고 남는다. 묻지마 유학보다 나은 효율성을 찾자. 결국 답은 현장이다.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개척하는 방법이다. ‘학력’ 만들기에 몽땅 힘을 쏟고 나서 귀국하여 여력이 없어 투자를 해야 할 상황에 모두가 멈추는 것 같다.

바야흐로 이제 외국 작곡가들이 우리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시대다. 독창적 소프트웨어로 글로벌 시장을 뚫어야 한다. 130년 넘게 수입한 구조를 벗어나 수출로의 발상 전환이 그래서 필요하다.

유럽의 ‘직항(直航)로 개설을 위해 다양한 정보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누구나 가는 길에서 체증(滯症)에 시달릴 것인가? 모험을 걸고 새 길을 갈 것인가, 인생이란 항시 선택이 운명을 바꾸는 주사위 앞에 서있는 것 같다. 체면이나 낯가림이 아닌 오픈마인드로 우리 예술가들의 기량이 묻히지 않고 살아났으면 좋겠다. 연륜이 있는 세대가 후배 세대의 징검다리 역할도 필요하고, 전문가의 멘토링을 통해 두드리면서 가는 지혜가 있었으면 한다.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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