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더 큰 우리
[경기시론] 더 큰 우리
  • 김근홍
  • 승인 2018.08.21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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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홍
김근홍

모두에게, 작은 우리(식구)를 비롯해 큰 우리(사회, 국가)에게 좋겠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일단 우리 식구, 특히 우리 자식이 어떤 일에 휩쓸리거나 관여되는 것은 안 된다. 왜냐고 묻기라도 하면, ‘좌우지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정도의 대답이 나온다. 그러나 그게 인지상정임을 아는 것, 그래서 본능처럼 나오는 대꾸도 인지상정으로 보되 반성해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제주에 온 예멘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니 막상 망설여질 정도로 험한 반응이 걱정된다. 청와대 청원에서도 지금껏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반대 청원을 했다고 하던가? 아니 우리 스스로 끼워줄 마음이 없다.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상 국제법적 의무도 있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좌우지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는 것,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 열 생각이 없다. 거기에다 인류애, 인권, 인간존엄성 같은 원칙을 이야기하면 아마도 이 사건을 찬찬히 다룬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처럼 육두문자까지 쏟아질지 모른다.
국민연금 이야기도 그렇다. 기존 계산보다 3년 앞당겨진 2057년에 고갈된다는 추정이다. 아직까지 국민연금으로 충분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에서는 지금까지 낸 것 돌려받고 국민연금에서 빠지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57년 근처에서 연금 탈 때가 되었을 때 고갈 탓에 막상 낸 연금조차 돌려받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걱정이 한 가지 원인이겠다. 그러나 그럴 경우 독일처럼 부과식으로 바꾸고 세금을 동원할지언정 국가의 책임을 팽개칠 배짱 큰 정치가들은 많지 않다. 더 큰 우리를 생각하지 않고 작은 우리, 이 경우에는 세대를 앞세운 탓도 없지 않다. 그래서 자꾸만 세대갈등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제껏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어느 한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지는 않는다. 갈등이 다스릴 수 없을 지경으로 치닫지 않는 한 말이다. 효(孝)란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부모 힘 빌어 자란 다음 부모 부양하고 다시 자식에게 부양 받는 세대 간의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그 양상이 달라질 수 있고, 부양보다 스스로 노후준비를 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가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이고 사회 차원에서는 세대 간의 책임이 계속된다.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앞서고, 불안이 다른 어떤 감정보다 강하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니 사람만이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녕 ‘생각하는 동물’이라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걱정이며 불안을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우리를 극복하고 더 큰 우리를 생각해볼 수도 있어야 한다. 500여 예멘 사람들 가운데 그동안의 전례를 놓고 추정해볼 때 난민으로 인정될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말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지금도 일손 구하기 힘든 분야의 일자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실들을 비틀고 물들여서 작은 우리마저도 다시 더 분열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독일, 프랑스, 심지어 덴마크나 스웨덴까지, 어디 별 큰 예외 없이 그런 데에서 득을 보는 세력들을 볼 수 있다. 우리 안에서는 그러지 않을까?
어머니께서 생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밥을 구걸하더라도 군소리 없이 상을 차려 대접하던 모습을 경험하곤 했었다. 앞으로도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이었지만, 아끼거나 아까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세상에 버릴 악습도 많지만, 버리지 말아야 할 미덕도 많다. 꾸준히 악습은 치워내고 미덕은 길러 가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더 행복한 우리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우리의 범위도 더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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