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주둔 50년 파주 미래유산작업 시급하다] 상. 잊혀져 가는 유산들
[미군 주둔 50년 파주 미래유산작업 시급하다] 상. 잊혀져 가는 유산들
  • 김요섭 기자
  • 승인 2018.08.22
  •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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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미노조 파주지부
▲ 파주시 문산읍 전국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파주지부 건물. 현재의 한국노총출범시기인 1960년 11월보다 2년여 앞서 설립됐다. 미군소속 파주노동자들이 미2사단장을 상대로 노동운동을 했던 파주 최초의 노동운동본부다.


주한 미군 주둔 50여년, 어둠속에서 잊어져 가는 유산들

파주는 주한미군과 특수 관계였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후 반세기 넘게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리읍 캠프 하우즈 등 9개 지역 50여곳에 미군기지 등이 있던 파주는 주한미군과 영욕(榮辱)을 함께 했다. 지난 2007년 주둔지가 우리 정부에 모두 반환되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동안 파주 곳곳에 유ㆍ무형자산이 양산됐다. 시간이 흘러도 그 아픈 흔적들은 그대로 남았으나 잊어야할 역사로 방치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시대에 오욕된 잔영(殘影) 또한 엄연히 당시의 가치를 지닌 파주역사이므로 미래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발굴ㆍ보존하는 미래유산작업은 시급하다. 이에 본보는 3회에 걸쳐 파주 속 주한미군과 궤를 같이 한 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유형 건축물을 둘러보고 미래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이 곳은 60년 전 노동자들이 파주 최초의 노조를 만들어 미군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벌였던 장소입니다”

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일 이용남 현장사진연구소장(사진작가)와 찾은 파주시 문산읍 소재 ‘전국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파주지부’ 건물은 퍽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권익수호라는 노동운동메시지가 또렷한 간판은 당시 치열한 운동상을 보여 주듯 반듯하게 걸려 있고, 건물 지붕이 약간 주저 않았을 뿐 전체적으로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관리는 되지 않았다.

미군 영내 비전투원인 노무자들의 노동조합이었던 파주지부 건물은 1959년 11월 전국 미군 종업원노조연맹이 결성되기 이전인 1958년 이미 자유노조(김천환 위원장, 이광조 부위원장)라는 이름으로 구성됐다. 현재의 한국노총이 출범한 1960년 11월보다 2년여 앞서 조직된 것이다. 이 건물은 이들이 주한미군 2사단장을 상대로 노동운동을 진두지휘했을때 사용되던 본부다.
1957년 처음 진료를 시작한 적성의원은 마을주민보다는 국가를 대신해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진료소역할을 담당했다.
1957년 처음 진료를 시작한 적성의원은 마을주민보다는 국가를 대신해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진료소역할을 담당했다.

전국 미군종업원노조연구로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99)를 취득했던 바비 클레티톤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파주지부는 미 2사단장에게 퇴직금 확립, 100% 인금 인상 등 노동운동을 펼쳤다”며 “파주 최초의 한국적 산업민주주의 실현이었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용남 사진작가는 “외국기관 노조였던 파주지부 건물은 힘겹게 미군노무자로 일하며 푸대접을 받았던 파주노동자들이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텄던 쉼터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개인의원이었지만 국가를 대신해 기지촌여성들의 보건 임무(성병관리)를 담당했던 역사적인 건물도 있다. 파평면 ‘적성의원’이다. 현재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건물주조차 당시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잊혀졌다.

적성의원은 1965년 파주시 건축물대장에 등재됐으나 실제로는 정전협정 이후인 1957년 처음 일반진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75) 등 마을주민들은 “적성의원은 처음에는 마을주민진료를 했으나 이후 상당기간 미군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진료소역할을 했다”고 기억했다.

이 작가는 “파주에 미군 등 유엔군 주둔시기(1962~1975년)에 기지촌 여성은 많을 때는 7천여 명에 달했는데 이 중 4천 500여 명 정도만이 보건증을 발급받았다”며 “평범한 개인의원이었던 적성의원 등은 의료시설이 취약했던 당시 국가의 명을 받아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관리를 했다. 당시 성병 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미군을 붙잡는데 일조를 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병원건물이다”고 설명했다.

DMZ(비무장지대) 주둔부대에 근무하던 미군들의 전용클럽역할을 했던 파주 장파리 ‘럭키바’ 건물도 그 역사적 의미가 망각된채 잊혀져 가고 있다. 현재 2층 규모의 홀하우스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장파리엔 미군들이 즐기며 달러를 마구 뿌렸던 럭키바 외에도 라스트찬스와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던 DMZ클럽이 있다. 이들 미군 클럽은 아이러니하게도 장파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미군들의 전용클럽이었던 파주 장파리 ‘럭키 바’ 건물. 장파리에는 홀하우스를 갖추며 2층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럭키바외에도 라스트찬스와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던 DMZ 클럽이 장파리 경제를 지탱해 줬다.
미군들의 전용클럽이었던 파주 장파리 ‘럭키 바’ 건물. 장파리에는 홀하우스를 갖추며 2층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럭키바외에도 라스트찬스와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던 DMZ 클럽이 장파리 경제를 지탱해 줬다.

김용성씨(74ㆍ퇴직 교사)는 “지금 광역단체마다 각종 페이를 만드는데 장파리는 1950년 후반부터 소위 장파리페이(마켓머니ㆍ전표)가 현금처럼 거래될 정도로 달러가 넘쳐 났더 곳이다”며 “이를 아는 동네 이장들이 조용필거리를 만들어 지역경제활성화를 하자고 시에 건의할 정도로 장파리는 장소적 상징성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파주= 김요섭기자
사진=조영애 다큐멘터리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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