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905년 일본침탈 최초의 희생물 ‘독도’
[기고] 1905년 일본침탈 최초의 희생물 ‘독도’
  • 길종성
  • 승인 2018.08.31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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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로부터 통한의 34년351일. 1910년 8월29일 경술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날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날로 경술국치, 국권피탈이라고도 한다.

일본은 국권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를 썼다. 1897년에 세워진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유린당한 후 1910년 한일병합이라는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일본은 1907년 6월1일 대한제국 국민들의 생활권을 통제하고 군대를 해산하기 위해 9월3일 총포급 화학류 단속법을 공포하여 한민족에게는 무기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제하고 강압하며 한일병합의 수순으로 들어간 것이다. 결국 1910년 8월29일 치욕스러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 때까지 을사오적의 매국행위와 일본의 무력침탈은 더욱 공세를 높였다. 인권과 언어, 나라까지 빼앗긴 선조들은 일제강점기 34년 351일간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다.

일본은 1904년 11월17일 대한제국 침탈의 신호탄으로 고종이 참석도 하지 않은 가운데 무력과 위협을 가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고종은 22일 미국정부에 을사조약의 무효를 알린다. 그러나 일본의 무력과 온갖 박해를 통해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다.

이 또한 순종황제의 동의 없이 친일파들이 순종황제의 어새를 가져다 찍는 매국행위가 벌어졌으나 황제의 서명은 없었다. 일본은 매국노들과 황제의 서명도 없는 조약서를 가지고 한일병합이라는 통한의 세월로 들어가게 됐다. 이렇듯 일본은 무력과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친일파를 앞세워 선조들의 인권과 생명마저 유린하는 일제병합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지구상에 영원이란 없다고 하듯 선조들의 독립운동과 서양국가들의 도움으로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다. 이에 우리는 불법으로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은 모두 무효로 주장하며 통한의 세월을 일본의 강제점령기라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36년으로 표현하는가?
치욕스러웠던 날들을 기억조차 하기 싫은데 기간을 왜 늘이는 건가! 일제 강점기 통한의 세월를 살아온 날은 34년 351일이다. 광복 이후 일본은 지금도 제국주의 망상을 떨치지 못하고 제2의 영토 침탈을 획책하고 있다. 대한의 영토 독도 침탈을 위해 온갖 작태를 부리고 있다. 

미래세대 주역들은 깨어나야 한다. 일본을 아시아의 성장 동반국가로는 함께 할 수 있지만 영토침탈을 일삼는 일본에게는 영토 문제만큼은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선조들이 지켜온 영토를 굳건히 지켜야 하며 더 이상 일본과 영토문제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 14년째 일본 방위 백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채택하고 중등사회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교육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단호한 조치로 일본의 영토침탈계략을 막아내고 옛 조선의 영토였던 대마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일본의 자극과 반성이 필요할 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생각해 직접 나서지 못한다면 독도를 지키고 대마도를 되찾으려는 애국단체들에게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이 멈출 때까지 정부와 국민들은 대마도 되찾기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길종성 영토지킴이독도사랑회 회장(독도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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