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新동력 창조인]봉구스 밥버거 대표 ‘청년 CEO’ 오세린
[미래 新동력 창조인]봉구스 밥버거 대표 ‘청년 CEO’ 오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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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신 선택한 창업… 단독 10만원으로 일군 ‘주먹밥 신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깨버려라”
3년 전만 해도 학교 앞에서 좌판을 깔고 주먹밥을 만들어 팔던 20대 노점상이 400여개의 프렌차이즈 매장을 거느리는 어엿한 CEO로 변모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봉구스 밥버거’의 대표 오세린씨(29)가 주인공이다.

불경기 속에 단돈 10만원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 뒤 400개에 달하는 프렌차이즈 매장을 거느리는 20대 청년은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격으로 창업에 도전,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하다.
수원에 소재한 봉구스 밥버거 본사에서 오 대표를 만나 좌충우돌 그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 겁 없던 청년, 단돈 10만원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다.
수원에서 태어난 오 대표는 대학교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영어 학원 강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반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던 소위 말하는 ‘엄친아’였다.

그러나 아들의 성적에 만족하질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고 첫 번째 일탈을 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원지역 고교가 아닌 경남의 한 특수목적고에 진학하게 된 것. 고교 졸업 후 지난 2004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도무지 대학을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당시 입학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자퇴를 결심했고, 부모님 몰래 등록금을 환불받아 수원지역에서 어묵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장사에 대한 어떤 노하우도, 그렇다고 든든한 자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공부가 싫어서 장사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군입대 시기를 제외한 2009년까지 맥주와 와인까지 길에서 팔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팔아보게 됐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러던 지난 2009년, 그의 나이 25살이 되던 해. 요리사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얻어 밥버거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약 1년간의 개발 시간이 투입됐다.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가명을 써 자신을 오봉구라고 했다.

그렇게 2010년 초 그는 직접 만든 1천500원짜리 밥버거를 들고 수원 동원고등학교 앞에 나가 좌판을 깔고 밥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한 개도 팔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셋째 날은 한 개만 팔렸고, 다음날은 세 개, 다음은 다섯 개….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발걸음이 늘어갔다.

결국엔 오 대표가 혼자 만들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그는 자신의 집에 세 명의 아주머니를 고용, 업소에서나 쓰는 대형밥솥을 놓고 밤새 밥버거를 만들어 하루에 1천개씩을 팔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장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학교 측에서 위생상 문제 등의 이유를 들어 오 대표를 내쫓았고, 그는 하는 수 없이 학교 앞에서 쫓겨 나오게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오 대표에게 동원고 학생들은 1천여 개의 응원 문자를 보내주며 큰 힘이 되어줬다.

그는 학생들의 응원을 얻어 그동안 모았던 몇백만원을 툴툴 털어 수원여자고등학교 인근에 봉구스 버거란 상호의 매장을 열었다. 여고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고, 그의 든든한 지원자인 동원고 학생들까지도 매장을 찾아주었다.

날개 돋친 듯 장사가 잘되자 그는 영복여고 앞에 2호점을 냈고, 지인들에게 두 곳의 매장을 더 내주며 수원에만 4개의 매장을 운영하게 된다. 지난 2011년 4월에 그는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외부 사람에게 직영점을 개설해주기에 이르렀다. 직영점 또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며 직영점을 개설하겠다는 문의전화가 그에게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프렌차이즈로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프렌차이즈 등록을 하게 됐고 불과 2년 만에 400개에 달하는 매장을 거느리게 됐다.

■ ‘위기는 곧 기회’
밥버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장도 확대됐다. 후발 브랜드의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던 올해 초 봉구스 밥버거에 한 차례 위기가 닥쳤다. 바로 한 유사업체가 잇따라 매장을 내면서 가맹거래법상 겸업금지 조항 위반과 밥버거 제조방식의 도용 문제로 인해 두 업체가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때 오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 오봉구 소자본 창업의 한 사람으로서 저를 믿고 창업하신 여러 소자본 창업자분들을 대표해 머리 숙여 부탁한다”라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확산돼 프렌차이즈 매장 점주들을 비롯해 봉구스 밥버거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오 대표의 진심 어린 마음을 읽게 된다. 어려웠던 시기 봉구스 밥버거의 인기가 한층 더 올라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오 대표는 “언젠가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라며 “페이스북에 올린 호소문은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컸다. 많은 이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용기를 내게 됐다”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자리 몫이 좋은 곳에 서로 매장을 열겠다는 창업주들이 덤벼드는 일이 잦아졌다. 어린 나이에 처음 겪는 일로 처음엔 당황했지만, 오 대표는 이를 계기로 좀 더 촘촘한 가맹관리를 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봉구스밥버거가 아닌 다른 밥버거의 음식재료 원산지가 수입산이란 언론 보도로 또다른 위기를 맞지만 그는 오히려 기회를 살려 가맹점주들을 설득, 모든 재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위기를 성장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로 바꾼 것이다.

오 대표는 “전에는 자본과 기술, 상품성 같은 물리적 측면을 중시했지만, 이제는 신뢰를 비롯한 정신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라며 “만약 처음 학교 앞에서 밥버거를 팔았을 때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별다른 발전 없이 지금도 학교 앞에서 밥버거를 팔고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위기 대처술에 대해 강조했다.

■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핵심 포인트

오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 내내 동원고 학생들 이야기를 수시로 꺼냈다. 밥버거를 팔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를 응원하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면서 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만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오 대표.

그는 소자본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업에 쉽게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창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며, 한 번에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복권도 아니다. 벼를 심듯이 차근차근 부지런하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오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가맹점 700호점 개설을 올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까지 1천200~1천500개의 가맹점을 개설할 것이다. 국내에서 최대로 개설할 수 있는 수치다. 나아가 호주에 직영점을 개설, 총판권을 판매할 것이며, 앞으로 5년 안에 10개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앞으로도 본사와 가맹점 간, 또 고객과 소통하는 봉구스밥버거가 되도록 전 직원이 노력하겠다”라며 “우리만의 장점을 통해 사람 냄새 나는 밥버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게 웃었다.

권혁준기자 khj@kyeonggi.com 

사진 = 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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