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 원자재 부족으로 박스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설 명절을 앞두고 ‘박스 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명절 연휴를 열흘가량 앞둔 31일 오전 10시께 군포시 부곡동에 위치한 이마트트레이더스 군포점. 쇼핑을 마친 시민들이 물건을 정리하는 포장대 곳곳엔 ‘공박스의 사용량이 많아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오니 장바구니를 꼭 이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을 읽던 임세진씨(43ㆍ여)는 “박스가 늘 남아 돌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다시 마트로 돌아가 장바구니를 사야겠다”고 당혹감을 나타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3시께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의 수원우체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박스 구입을 문의하자 외부 판매가 제한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2개씩 소량 판매는 가능하지만 재고가 모자라 그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박스 구매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박스 도매업체는 재고가 없어 배송까지 3주 이상 걸린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업체 대표 박상진씨(53)는 “원자재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로 택배 수요까지 늘어나다 보니 박스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재고가 있으면 바로 팔겠지만 여기저기 사재기를 하는 납품업체까지 생겨나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스 대란’ 우려는 지난해 10월12일 안산시 단원구 대양제지 화재 이후 시작됐다. 원자재가 되는 골판지의 국내 생산량 7%(월 3만여t) 이상을 감당하는 이곳 공장에서의 화재로 석 달째 골판지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택배 물량이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는 데다 설 명절까지 겹치면서 골판지가 이른바 ‘금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제지업계에 따르면 대양제지 화재 이후 원지 납품 단가는 20~25%가량 인상됐고 골판지 값은 지난해 초 1t당 35만원에서 올해 초 42만원으로 20%가량 치솟았다. 박스 가격은 우체국 택배용을 기준으로 1㎡당 480원대에서 560원대까지 올랐다.
박스 원자재인 골판지가 부족한 데다 가격까지 오르고 있지만, 수요는 줄지 않아 설 명절을 앞두고 박스 대란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사전 물량을 확보한 대형업체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세업체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대양제지 화재 이후 물량 부족을 예상한 업체들이 원지를 대량 구매하면서 골판지 시장은 현재 수요 대비 물량이 30% 이상 부족한 상태”라며 “평소 같으면 주문에서 납품까지 3~4일이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통상 2주에서 길면 3주까지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박스의 물량은 부족한데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어 배송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박스 원가 인상분을 소비자 판매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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