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8월 28일 오후 7시 수원지방법원 인근 한 빌딩의 변호사 사무실에는 각계각층의 시민 100여명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축하와 격려를 건내며 30대 초반의 젊은 두 변호사의 고된 앞날을 응원했다.
바로 법무법인 다산의 인권상담소, 후에 다산인권센터로 발전하는 사회적 약자의 등불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김칠준 변호사(52)와 김동균 변호사(52)가 경기남부지역의 인권문제를 다루고자 변호사 사무실에 인권상담소를 개소,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역사라 불리는 다산인권센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인권이라는 명칭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먹고 사는 것과 경제부흥이 다른 가치관들을 압도하던 1990년대 초반, 소외된 이들의 등불이 돼주겠다던 다산인권센터가 어느덧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국가보안법과 노동법 등 법의 부당함에 인권을 유린당했던 이들과 약자들의 곳곳에서 항상 이들의 인권을 대변해왔던 다산인권센터의 굴곡졌던 20년 발자취를 되짚어 보며 우리 사회의 인권을 다시 생각해본다.
김칠준 변호사와 김동균 변호사는 경기남부지역의 인권문제를 다루고자 인권상담소를 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 속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경기지역 뿐만 아니라 전민학련 사건, 한총련 사건, 천리마 사건 등 격변의 시기에 굵직한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또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이끈 사건도 있었다.
1996년 5월 딸과 자신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사위를 살해한 광명의 이상희 할머니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이 할머니 사건은 딸에 대한 사위의 지속적인 폭력에 대한 경찰의 방관에서 비롯됐다.
가정폭력을 이기다 못한 딸이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3번이나 출동했지만, ‘국가가 가정에 개입을 할 수 없다’며 묵살 당했고, 당시 73세의 이 할머니는 폭력을 이기다 못해 우발적으로 사위를 살해했다.
이 사건에서 다산 등 인권단체는 국가가 살인을 부추긴 것이라며 구명운동을 시행했고, 이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까지 이어졌다.
1996년 일어난 평택 에바다 사건은 사건을 알리고, 진상을 파악하는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농아인복지시설인 에바다는 원생 70여명을 돈을 받고 미국으로 팔아넘기고, 이름을 바꿔치기해 평택시로부터 이중 지원을 받았다.
인근의 제본공장에 새벽까지 강제노동을 시키고 폭행도 일어났다.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던 시설에서 교사들도 학생들을 위해 모였지만, 이 싸움은 고소·고발이 남발되면서 장장 7년에 걸쳐 진행됐다.
사건 초기부터 다산인권센터의 김칠준 변호사, 박진 간사, 송원찬 소장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 국회는 지난해 12월 에바다 사태를 계기로 장애인생활시설의 인권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15년만에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앞서 2000년, 다산 인권상담소는 다산인권센터로 독립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변호하는 게 아닌, 먼저 사회적 약자를 찾아나서고 이슈와 불합리를 끌어내자는 의지였다.
다산인권센터는 청소년인권캠프를 통해 청소년들에 대한 인권운동과 활동을 시작하고, 2005년부터 그동안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대기업 삼성의 노동자감시 통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삼성SDI 강재민씨에 대한 삼성의 위치추적과 감시였다.
다산인권센터는 이 사건을 세상에 폭로하는 한편, 삼성의 직원 감시, 반도체 공장에서 죽음을 당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이들의 산업재해 인정과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는 단체 반올림은 현재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다산인권센터는 앞으로 지역으로 눈을 돌려 경기지역 인권문제에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굵직굵직한 국내 인권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지역으로 눈을 돌려 풀뿌리 운동을 준비 중이다.
1997년 현재 다산인권센터가 들어서 있는 가정집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나며 지역의 고민과 의제를 주변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경기지역에 산재해 있는 빈곤문제, 철거민 문제, 노사문제 등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 해결해 나가려는 것이다.
20년 동안 쉼없이 인권운동을 해왔지만, 다산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성년을 맞은 다산인권센터는 20주년 기념사업으로 ‘그 사람, 스무살’이라는 이름의 백서와 ‘그 사람, 스무살 인권이 웃는다’ 인권콘서트를 27일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서 열고, 더욱 힘찬 발돋움을 기약하고 있다.
▲박진 상임활동가 인터뷰
박진 상임활동가(40)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다 20대 젊은 시절에 다산상담소에 들어와 어느 덧 15년째 인권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다산의 20년 인권운동 중 절반 이상을 함께 한 그녀는 20년 전과 현재 사회의 인권이 크게 바뀐 게 없다고 지적했다.
-20년 전과 지금의 인권, 변화했는가
△인권에 절박함을 느껴 문을 열었던 20년 전과 현재의 인권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본다.
예전의 인권은 말을 꺼내기도 힘든, 불문율 같은 존재였으나 현재는 인권을 누구나 쉽게 논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자유권은 신장됐지만 여전히 노동권과 평등권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지만,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여전히 절박한 문제다.
- 각 시·도에서 인권조례 등을 만드는 등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의 인권 논의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인권이 소비되는 듯하는 느낌이 강하다. 인권을 어떤 조례나 법적으로 만든다면 법의 테두리에 갇힐 수 있다. 인권은 법이나 제도에 머무르는 게 아니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 앞으로 다산인권센터의 활동 방향은
△인권은 ‘보통 사람들’의 문제이며, ‘보통의 우리’가 직면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역할을 나누기 위해 이제 지역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 2010년부터 지역운동포럼도 개최하며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문제를 토론하고, 지역민들을 대면하면서 지역에서부터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 사회적 인권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동체가 고민할 때 인권은 나아가고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아울러 인권교육을 강화해 스스로의 권리와 내 주변의 삶의 현장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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