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발 멜라민 파동 등으로 인해 모유를 구하려는 산모들이 늘면서 조숙아, 미숙아 등에 모유를 공급하는 ‘모유은행’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또 일부 인터넷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모유를 구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는 모유정책과 관련한 법규정이 전무한데다 의료계 사이에서조차 모유은행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모유은행의 운영을 놓고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찬반논란
서울과 인천, 전북 등 5곳의 모유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모유수유협회는 조숙아나 미숙아, 수술 후 영양이 필요한 아이, 선천성 대사 이상 유아 등에게는 필요 영양분을 갖춘 모유가 필요하다며 모유은행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모유 기증 절차나 검사과정 등이 까다롭게 진행되고 산모로부터 기증받은 모유는 저온 살균처리되기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모유은행과 모유수유협회 측의 공통된 설명이다.
김혜숙 한국모유수유협회장(경희대 간호대학 겸임교수)은 “모유의 변질이나 위생상태 등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안전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기증받은 모유는 저온 살균 처리돼 냉동상태로 안전하게 보관한 후 수혜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모유수유의사회와 대한소아과학회 등 의료계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모유은행 운영과 모유 판매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모유 기증의 가이드라인이나 검증 등의 시스템이 전무하고 모유은행의 관리·검사절차 등이 국제적 기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데다 모유은행이 사실상 자유롭게 모유를 ‘거래’ 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손문 한국소아과학회 교수(삼성제일병원 소아과)는 “B형 간염 등의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모유로는 바이러스 등이 배출될 수 있는 만큼 검사자체가 쉽지 않다”면서 “모유은행이 말하는 사전 검사와 저온 멸균처리로만은 질병 전파 우려를 100% 차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모유은행 비교
국내에서는 한국모유수유협회 사랑나눔 모유은행(서울)과 다산한의원(인천),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모유은행(서울), 인정병원 모유은행(서울), 제일산부인과(전북 익산) 등 모두 5곳의 모유은행이 운영 중이다.
이들 모유은행은 정부의 지원없이 병원이나 학회에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 같이 투명한 시스템이나 검증절차 및 방법 등 어떠한 제조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경우 정부와 모유은행, 의료계 등이 삼위일체가 돼 모유의 기증단계부터 유통까지 체계적인 검증·관리 체계를 구축, 만약의 위험성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모유 기증자의 과거력을 정밀검사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모유이력추적시스템을 도입, 운영하고 있는가 하면 모유은행 간 협조체계를 통해 매년 가이드라인을 개정토록 하고 있다. 모유은행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등을 통해 도출된 문제점과 개선점 등을 적절하게 반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반면 국내 모유은행의 경우 3~5명이 기증한 모유를 한군데에 모아 저온 살균처리한 뒤 정제처리 과정을 거쳐 냉동보관된다. 이 때문에 모유 기증자의 과거력 등을 알 수 없을 뿐더러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증자를 역추적, 적극적인 대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미국 등 선진국의 모유 은행들은 국내 모유은행들과 달리 모유 기증이나 보관·관리, 유통 등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홈페이지 올리는 등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 모유은행은 수혜자들에게 모유 기증자의 과거력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국내 모유은행은 기증받은 모유를 혼합, 멸균작업을 거쳐 이를 일정한 팩에 나눠 담아 냉동보관하다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모유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산모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선진국에서는 이럴 경우 6시간 이내에 산모추적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유 거래와 관련, “외국의 경우 모유거래의 악용을 막기 위해 미숙아나 조산아 등만이 모유은행 이용이 가능하도록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모유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뒷짐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모유 거래에 대한 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이미 1년여 전부터 모유은행이 설립, 운영되면서 모유 판매가 이뤄지고 있지만 모유 거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법규정이나 시스템 등 아무런 안전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모자보건사업 등을 통해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정부가 정작 산모와 아기에게 밀접한 영향이 있는 모유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 국민들의 건강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국내 모유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료계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해외사례를 예로 들며 국내 모유은행이 갖고 있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관련 법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유미 한국모유수유의사회장(소아과 전문의)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모유은행을 이용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다”면서 “국내에는 이와 관련한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거나 보상받을 길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는 아직 모유은행과 관련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없는 만큼 모유은행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며 “모유은행은 물론 인터넷과 산후조리원 등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는 모유 거래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모자보건과 안승섭 사무관은 “현재 모유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며 “추후 실태조사 및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이종철·노수정기자 jc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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