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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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이 고장은 고구려 땅으로 ‘근평군(斤平郡)’으로 불리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가평으로 이름이 바뀐다. 고려시대에는 춘주(春州)의 속군(屬郡)이었다.
조선시대로 들어 오면서는 한낱 조그마한 고을에 지나지 않았던 이 고장이 덩치를 부풀리게 된다. 태종때 이르러서는 행정구역이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돼 지방관으로 현감이 파견됐다. 고종 25년(1888년)에는 강원도로 편입됐다 1896년 가평군으로 독립했다. 1942년 설악면이 양평군에서 가평군으로 편입됐다. 1973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가평면이 가평읍으로 승격되고 양평군 삼회리가 가평군 외서면으로 편입됐으며 2004년 외서면이 청평면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역사 속 인물
▲과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물이라면 적어도 넉넉한 인심과 산 높고 물 맑은 정기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고장은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
우선 고려말 불교를 진흥시킨 보우 국사(1301~1382년)를 꼽을 수 있다. 흔히 태고(太古)라고 불리는 보우 국사는 열세살 되던 해 출가, 삼각산에 태고사를 지었고 충목왕 2년(1346년) 원나라로 유학, 하무산(霞霧山) 청공(淸珙)의 법을 이어받아 임제종(臨濟宗)의 시조(始祖)가 됐다. 귀국한 뒤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됐지만 신돈의 횡포를 미워해 소설사(小雪師)로 돌아갔다 신돈이 죽은 후 국사(國師)가 됐다.
조선시대 대동법을 제창한 김육 선생도 이 고장이 배출한 인물이다. 인조 3년(1625년) 안변도호부사로 나가 청의 침입에 대비했고 동지성절추진하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의·우부승지·장례원판결사를 지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공물법을 폐지하고 대동법 실시를 건의하는 한편, ‘구황촬요(救荒撮要)’ 등을 편찬했다. 김육 선생의 경제학은 반계 유형원 선생에게 영향을 끼쳤다. 양명학의 선구자 남언경 선생은 양명학자로 퇴계 이황 선생을 비판했다는 주자학파의 탄핵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지만 특별한 시각으로 양명학을 수용하고 선도했다. 당시 최고 석학이었던 퇴계 이황 선생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 선생도 이 고장 출신이다.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 선생의 문인이었으며 황해도관찰사·좌승지·도승지를 거쳐 광해군 4년(1612년) 예조참판·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어우야담’을 비롯해 ‘어우집’ 등의 문집들을 남겼다.
조선 후기 남정철 선생은 정치외교가다. 고종 19년(188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호조·공조참의를 지냈다. 갑신정변 이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 흥선대원군을 문안했다. 오스트리아 전권위원인 베커와 조오수호통상조약(朝墺修好通商條約)을 체결했고, 고종황제 명을 받고 애국가를 지었다. 외국과의 조약 체결현장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그려 걸었던 오경석 선생도 이 고장이 배출했다. 신학문에 일찍 눈을 떠 ‘해국도지(海國圖誌)’ 등을 들여와 친구인 유홍기 선생에게 읽게 하고 소장 정치인들을 지도해 개화파를 만들었다. 좌의정 박규수 선생과 함께 문호 개방을 주장,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태극기를 제일 먼저 그려 일본 국기와 나란히 걸어 조선의 존재를 만방에 알렸다. 구한말 선비 박장호 선생도 이 고장 출신이다. 호는 화남으로 1881년 개화당의 친일정책에 반대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제의 침략의도를 간파하고 강원도 지방의 의병대장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3·1운동 이후 남만주로 망명, 항일투쟁을 펼쳤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됐다.
▲현재
다른 고장과 마찬가지로 각계각층에서 숱한 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정계에선 윤호중 국회의원, 최재성 국회의원, 최병조 서울시의원, 최상범 서울시의원, 박원용 경기도 교육위원이 대표적이다.
법조계로는 이우재 대법원 법률연구관, 이철의 서울고등법원 판사, 신한미 서울가정법원 판사, 유홍섭 전북 익산시 법원 판사, 이정세 변호사, 이재교 로우&텍스법률사무소 변호사, 한광세 동남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신현호 해울법률사무소 변호사, 박혁 변호사, 권도중 대우조선 법무팀 부장이 활동하고 있다.
관계로는 정진규 전 해양경찰청장, 이용준 국정원 부이사관, 이계문 재정경제부 부이사관, 양희석 국무총리실 부이사관, 박광일 경기도 제2청 문화복지국장, 이병우 군포시청 주민생활국장, 주명걸 김포시청 건설교통국장, 이수경 하남시 도시건설국장이 이 고장 출신이다. 이상훈 해군 준장과 윤경진 육군 대령(육군본부 근무)은 군대에서 이 고장의 맥을 잇고 있다.
학계는 정연호 대구카톨릭대 러시아학과 과장, 이응수 세종대 일본어학과 교수, 김익진 한서대 재료공학과 과장, 남궁원 경원전문대 교수, 강화석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파견교수, 장노순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가 있다.
홍원기 한화리조트 대표이사, 서기원 ㈜서원펠럭스 대표이사, 신동희 예손정밀 대표이사, 이강호 전 제림교역 대표이사, 최성균 전 한국남부발전㈜ 남제주화력발전처장, 전호경 신양기술㈜ 대표, 김선복 서전일렉스㈜ 대표는 재계에서 고장의 명예를 드높히고 있다.
/가평=고창수기자 cskh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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