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 첫만남, 헤어질땐 차도남 같은 매력에 푹~
그를 만나기로 한 아침. 극도의 긴장과 흥분으로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솔직히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그가 차가울까봐, 나를 경계할까봐 만남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대면한 뒤에는 부드럽고 촉촉한 살결(?)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름 아닌 뱀이다.
뱀은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동물이다. 성경에서 뱀은 이브를 유혹해 ‘금단의 열매’를 따 먹게 함으로써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2년 만에 부활한 경기일보 기자체험의 첫 타자로 지명되면서 고민 끝에 ‘계사년(癸巳年) 맞이 뱀 사육 체험’을 결정하기까지 나도 그랬다.
생각만 해도 징그러워 소름이 끼치는데 감히 어떻게 사육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날 만큼은 ‘여자’이기 이전에 ‘기자’여야 했다.
뱀을 찾아 도착한 곳은 용인 에버랜드의 아프리카관.
알록달록한 사육복으로 갈아입은 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여우’로 알려진 사막여우와 ‘사막의 보초병’ 미어캣 등 귀여운 동물들과 계절을 무색케 하는 나비들이 가득찬 공간을 지나고 나니 뱀의 공간이 나타났다.
동물이 좋아 사육사가 됐다는 5년 경력의 강혜윤 사육사(30)의 지도 하에 드디어 뱀 사육사로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물지는 않죠?”라는 우문에 “물 수도 있죠”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보살펴야 할 알비노 버마비단구렁이와 볼파이톤, 보아뱀 등 3종류의 뱀들이 독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신 먹잇감을 질식시켜 삼킬 정도로 또아리를 트는 힘이 어마어마하단다.
“입 쪽에 야콥슨 기관이라는 감지기관이 있어서 열로 주변을 파악하니까 머리쪽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에요.”
3종류 총 9마리의 뱀이 특별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을 맞는데 이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상태에 따라 방사를 하는 것도 사육사의 몫이었다.
뱀들은 한달 주기로 탈피와 성장을 반복하는데, 먹이를 먹고 난 뒤 일주일 후 배설을 하고 탈피 전 블루단계(에너지를 끌어올려 탈피를 준비하면서 눈색이 탁해지는 시기)를 거쳐 허물을 벗는데까지 걸리는 과정을 살피고 기록하는 것도 뱀 사육에서 매일 필요한 과정이다.
또 뱀 사육에서 가장 중요한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기 위해 자외선을 공급해주는 UV전등과 열을 공급하는 전등을 수시로 확인하고 분무기로 물도 뿌려줘야 한다.
뱀이 방사되는 관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자연의 분위기를 내도록 넣어 두었던 깔집을 긁어내고, 부드러운 새 나무껍질을 깔고, 걸레를 사용해 벽면과 유리도 닦으며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내 방을 청소한게 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열심히 청소를 마친 뒤에는 사육장에 있는 뱀을 모시러 갔다.
가장 먼저 방사할 뱀은 알비노 버마비단구렁이. 길이가 2m가 넘고 무게는 20㎏이 넘는 거대한 뱀이다.
이 거대한 뱀의 이름은 ‘슬기’이고, 나이는 10살쯤 됐는데 한달에 한번쯤 3㎏ 정도를 먹는다고 한다. 주로 토끼나 기니피그 등을 주면 질식시켜서 한번에 삼킨다고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먹이를 주는 때가 아니라 그 광경을 볼 수는 없었다.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먹이를 통채로 삼킬 수 있는 이유는 아랫턱이 양옆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멜라닌 색소가 없는 알비노 종류는 눈도 빨갛다. 몸통에 비해 작은 얼굴에 눈도 작아 붉은 눈을 마주치니 위협적이다. 그나마 몸통은 상큼한 노란색이어서 두려움을 상쇄해 줬지만 아무래도 슬기의 몸에 손을 대기는 무서웠다.
몇번 꼬리쪽이라도 잡아보려 애쓰다 시간만 낭비했고, 결국 목도리 감듯 목에 둘러 방사장으로 빠져나가는 강 사육사의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강 사육사는 “슬기야, 가자”고 뱀에게 말까지 걸었다. 바라보는 눈빛이 애인을 보듯 다정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전시관에 들어간 슬기는 이내 스르륵 미끄러지며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배와 몸통은 땅에 붙여둔 채 머리쪽만 높이 쳐들고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이어 슬기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볼파이톤과 보아뱀까지 총 3마리를 옮겨 방사하며 뱀을 만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데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뱀의 가죽이 매우 부드럽고 촉촉했다.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뱀을 닦아줄 때는 뱀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스킨십이 최고다. 꿈틀거리며 내 팔목을 휘어감던 뱀의 결을 따라 쓸어내리자 슬기는 온순한 모습으로 가만히 목욕을 즐겼다. 몇번 반복하고 나니 친근감이 생기고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매력도 느껴졌다. 급기야 나중에는 아기 다루듯 뱀을 안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 사육사에게 물어보니 뱀이 사육사를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이동하거나 닦아주거나 만져줄 때 사육사 특유의 ‘손맛’을 기억하기는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이런 매력 때문에 뱀 사육 마니아층이 다수 존재한다고.
계사년을 맞아 내장객들에게 ‘사육사가 직접 들려주는 상서로운 뱀 이야기’라는 스토리텔링을 하루 3차례 직접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일인데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찾아온 가족단위 관람객이 꽤 많았다.
사육사는 이들에게 사악함, 파괴 등 뱀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원래 뱀이 지혜와 다산, 풍요를 상징한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특성 때문에 재생과 불멸을 상징하기도 하며 강한 생존력을 졌다는 점을 알려주고, 독의 유무에 따라 구분되는 독사와 구렁이의 생활방식 차이도 설명했다.
또 구렁이과에 남아있는 퇴화된 발톱을 보여주며 뱀에 발이 있었다는 것과 냉혈동물이라고 알려진 뱀이 사실은 변온동물이라 주변 온도에 따라 따뜻해지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같은 스토리텔링에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귀를 기울이며 뱀에 대한 인식을 바꿔갈 무렵, 포토타임이 시작됐다.
한명씩 나와 뱀을 만져보거나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며 뱀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사육사로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질문하자 강 사육사는 “동물도 생명인데 손님들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등 소중히 대하지 않을 때가 많아 속상하다”며 “뱀 뿐만 아니라 동물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뱀 사육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허물이었다. 수차례 탈피하며 성장하는 뱀처럼 계사년을 맞은 우리의 한해도 한꺼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지현기자 jh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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