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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 리포트]택배상자 옮기기... 앉았다 일어났다 30분만에... “아이고, 허리야~”
사회 1일 현장체험

[현장체험 리포트]택배상자 옮기기... 앉았다 일어났다 30분만에... “아이고, 허리야~”

하루 15시간 물품 분류부터 배송까지 기사들 몫

■ 새벽 5시. 택배 시작

‘따르릉∼’ 자명종 파장에 기자가 흔들리듯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새벽 5시였다. 전날의 비장함 보다는 귀찮음(?)이 살짝 앞섰다. 뒤척이다 보니 어느 덧 30분이 지났다. 대충 세면을 한 뒤 집을 나섰다.

40분을 달려 장대일 소장과 만나기로 한 화성시 안녕동 ‘현대택배 수원지점 집배센터’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전 6시 40분. 이른 시간임에도 센터 안은 진입도 힘들 만큼 택배차로 가득했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장 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후 택배차량 사이로 장 소장이 나타났다.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기자는 하루 동안 입게 될 유니폼을 지급받고 바로 분류장으로 향했다. 분류장 안에는 20여명의 택배기사들이 흩어져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전 7시. 인사를 하려는 데 멀리서 경적이 울렸다. 탑차다. 구석구석 흩어져 있던 택배기사들은 담배를 끄고 하나 둘 차량 옆으로 모여들었다. 11톤 탑차의 옆문이 서서히 올라갔다. 그사이 택배기사들은 30m가량 되는 조립식 컨베이어를 탑차 옆문에 연결했다. 도킹(?)에 성공하자 이윽고 짐칸에 실려 있던 천여 개의 택배 물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 하나 들어가기 힘들 만큼 빡빡했다. 컨베이어 위로 택배가 하나 둘 올랐다. 빠른 속도로 벨트가 돌자 택배기사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여기서 할 일은 주소지를 보고 각자 구역에 맞는 택배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경험이 없는 기자에게는 라벨지에 깨알 같이 적힌 주소를 찾는 일조차 버거웠다. 기자가 무사통과 시킨 택배가 컨베이어 끝에 쌓일 무렵 결국 기자에게 다른 일이 떨어졌다.

탑차에서 택배를 내리는 하역작업이다. 물량이 워낙 많은 터라 이 작업도 수월하진 않았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차례.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허리 감각이 점차 무뎌왔다. 그렇다고 해서 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시간가량 아무 생각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 덧 바닥을 보였다.

다음 탑차가 오기까지 휴식이 주어졌다. 잃어버린 허리 감각을 찾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장 소장이 다가왔다. 도착 2시간이 지나서야 오늘 하루 동행 할 택배기사 김대기 사장(41)을 소개받았다. 처음에는 ‘사장’이라는 호칭이 의례적인 인사 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택배기사 대부분은 정말 사장이다. 법적으로 그들은 회사소속이 아닌 지입차주, 이른 바 ‘특수고용 노동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매달 40∼50만원 소요되는 유류비는 물론 통신요금과 차량 유지비 모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10년 째 몰고 다니는 1톤 탑차도 본인 차량이다. 심지어 차량에 회사 로고를 새길 때 드는 비용도 본인 부담이다.

기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홈쇼핑 화물을 실은 5톤 탑차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물량이 적어 직접 물건을 내린 뒤 각자 짐칸에 적재했다.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동선에 따라 요령껏 실어야 한다. 단순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기자가 도울 일도 제한적이었다. 그저 화물을 짐칸에 올려놓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오전 10시가 됐다.

첫 배송지는 ‘공군아파트’. 이곳은 단지와 단지 사이가 짧아 수월한 편에 속한다. 그래도 개당 3∼5분가량 소요된다. 고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다면 메모를 남기거나 경비실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 집에 있는 관계로 20여개를 1시간에 끝냈다. 그것도 잠시뿐 이곳 택배기사 사이에서 ‘배송지옥’으로 통하는 ‘아이파크시티’ 단지 배송이 다가왔다.

■ ‘들어갈 수 없다구요?’ …

아이파크는 단지만 6개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의 아파트다. 문제는 안전 상 문제로 차량 진입이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높이제한에 지하주차장도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고와 분실위험이 따라도 인근 도로에 정차해 놓고 물건을 배송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곧 돈’인 택배기사로서는 여간 골치가 아니다. 힘은 힘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벌지 못한다. 그나마 단지 안에 ‘무인택배보관함’이 있지만 이것마저 신청하지 않은 집이 많아 수 백m 떨어진 경비실을 왔다 갔다 뛰어다니기 바쁘다.

김 씨는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 대부분 범죄나 사고발생 등을 이유로 택배차량 진입을 막는 곳이 많은 데 이 문제로 부녀회장과 시비가 붙어 아예 ‘퇴출’ 당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곳 배송물량은 50여개. 사는 사람이 많아 물량도 많다. 기자도 비교적 작고 가벼운 물건로 10개를 골라 직접 배송을 해봤다. ‘2단지 2XX호’, ‘1XX호’ 제 집 드나들 듯 익숙한 김 씨와는 달리 초짜에게 이곳은 미로나 다름없다. 단지 곳곳에 있는 배치도를 이정표로 힘겹게 주소를 찾아갔다. 주인 허락 없이는 출입을 할 수 없어 입구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주인을 호출했다. ‘띠-띠-’하는 부저가 울리자 주인 목소리가 들렸다.

“김 아무개씨 맞죠? 택뱁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그러자 “그냥 경비실에 맡겨줘요”라는 말만 남기고 퉁명하게 인터폰을 끊었다. 택배기사라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슬슬 짜증이 밀려 왔다.

“경비실은 또 어디지?” 혼자 구시렁대며 두 블록이나 떨어진 경비실로 뛰어가 물건을 맡겼다. 이런 식으로 택배 10개를 배송하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시간은 점심을 훌쩍 넘겨 오후 2시를 가리켰다.

‘밥 달라’며 요동치는 배를 달래고자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2단지 쪽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김 씨 역시 고픈 배를 담배로 달래고 있었다.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점심 전까지 배송을 부탁했는데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느냐는 항의 전화였다.

“오늘 단지 물량이 많아서 조금 늦어졌습니다. ‘4XX’호 맞으시죠. 10분만 기다려주…”, “지금 나가야 하니까 바로 갖다 주세요”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김 씨의 한 숨소리가 단지를 맴돌았다. 그렇게 남은 물량까지 배송을 마치고 오후 3시쯤 돼서야 늦은 점심을 할 수 있었다.

■ 특수고용인 처우 ‘4년째 요지부동’

김 씨가 택배업에 뛰어든 것은 10년 전 일이다. 젊을 때는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복지사 일을 하기도 했다. 가정 형편 문제로 일을 그만 둘 때 까지만 해도 택배업은 일의 강도나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택배 초기에는 하루 80개를 배송해도 벌어드리는 수익은 220만원정도 됐어요. 지금은 물량이 배로 늘어도 그 만큼 못 법니다. 대형업체간 저가경쟁으로 애꿎은 택배기사만 나가떨어지고 있는 거죠”

지난해 6월부터 김 씨 같은 택배기사에게도 ‘산업재해’가 적용됐지만, 다쳐도 돈 나올 구석 없는 이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다.

식사를 마치자 김 씨는 금세 트럭에 다시 탔다. 배송은 끝났지만 화물 수집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집을 끝내고 물건을 탑차에 다 태운 시각은 오후 5시. 출근한 지 11시간 만에 ‘김 사장님’의 일과가 끝났다.

그나마 물량이 적은 월요일이라 일찍 끝난 거다. 평소라면 밤 10시가 되도 마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렇게 일한 김 씨의 이날 일당은 4만2천원, 기자가 번 돈은 6천원도 되지 않는다. 그동안 대형 택배업체는 가격 덤핑을 통해 배송료를 낮췄고, 중소업체는 대형업체를 핑계로 현장 택배기사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지난 2009년에는 이 같은 현실을 고발코자 한 택배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현재 택배업계는 사상최대 물동량 실적을 올렸다. 그럼에도 택배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광수기자 ksthink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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