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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 리포트]가천대길병원 중앙공급실
사회 1일 현장체험

[현장체험 리포트]가천대길병원 중앙공급실

진료ㆍ수술 위한 소중한 땀방울… 병원의 '심장’ 따로있었네

개인적으로 병원은 가만히 있어도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장시간 머물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의료 담당’인 탓에 본보 기자체험 타자로 지명되면서 개인적인 선입견도 바꿀 겸 가천대길병원 홍보팀에 ‘진짜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체험일 오전 8시, 사전에 구체적인 언질도 없이 몸만 오라는 홍보팀 최보경 선생님(29)과 찾은 곳은 ‘응급센터’도, ‘재활병동’도, ‘암센터’도 아닌 ‘중앙공급실’.

최 선생님은 “이곳이 병원의 ‘속살’이자 ‘심장’이에요”라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병원 내부를 보고 싶다면 여기가 제격”이라고 뒷걸음질 치는 내 팔을 이끌었다.

단순하게 병원에서 쓰는 물품을 세척해 다시 쓰는 줄만 알았는데, 거의 모든 물품과 도구, 장비 등이 이곳에서 수십가지의 멸균 과정을 거쳐 다시 병원 곳곳으로 공급된단다.

통제구역인 중앙공급실(CSR, Central Supply Room) 문 안으로 들어서니 중앙공급실을 총괄하는 이막달 수간호사(48)가 신발부터 수술용 가운, 헤어 가운까지 새로운 복장을 나에게 건넸다. 엉거주춤한 행동으로 생전 처음 수술용 가운을 입다 보니, 가운을 거꾸로 입은 내 모습을 보고 같이 교육을 받던 20대 초중반의 신입 간호사들이 ‘꺄르르’하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때아닌 굴욕을 한바탕 겪은 후 신입 간호사들과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 처음 배정받은 일은 각 병동에서 사용한 물품을 다시 중앙공급실로 수거하는 작업이었다. 일반 병동으로 가기 위해 겨우 갈아입었던 수술용 가운을 벗고 13층, 8층, 6층… 그렇게 수거 목록에 적힌 대로 병동을 차례대로 찾아갔다. 내 키만한 수거용 카트를 끌면서 각 병동에서 핀셋, 캔, 소독용 도구 등 수거 물품을 차곡차곡 수거함에 담아 수거목록과 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에야 중앙공급실로 가져갈 수 있었다.

다른 직원과 내가 각각 수거한 물품을 가져간 곳은 빨간색 바닥이 인상적인 세척실. “바닥 색깔이 예쁘네요”라고 물었더니 빨간색 바닥은 오염 구역, 파란색 바닥은 준 청결구역, 초록색 바닥은 청결구역으로 각 멸균 정도를 나타내며, 서로 분리돼 병균의 이동을 막는 곳이란다.

세척실에서는 오염된 구역이라며 균의 이동을 막기 위해 1회용 가운과 마스크, 장갑, 신발을 착용해야 했다. 대부분 물품은 대형 자동세척기가 해결해 주지만, 일부 캔이나 다른 물품들은 구석까지 깔끔하게 씻으려면 직접 해야 한다기에 집에서도 하지 않는 설거지를 했다. 특수용액으로 깔끔하게 하나하나 닦아 세척실 임무를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준 청결구역으로 이동해 포장 및 멸균 작업을 했다.

준청결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또다시 수술용 가운 등으로 복장을 다시 갈아입고 손 세척과 눈 세척을 거친 뒤 들어갈 수 있었다. 스태플러, 호스, 마스크 등 세척과 건조 작업이 끝난 물품을 종류대로 나눠 멸균하기 위해 진공 포장 작업을 한 후 별도로 구분된 방으로 이동해 천으로 된 린넨류를 멸균하기 전에 곱게 개어 포장하는 일을 했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일은 포셉(Forcep)과 트레이(Tray)로 드레싱 세트를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각 병동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포셉 1개와 트레이 1개를 묶어 특수 천으로 포장하고, 특수 테이프로 마무리하면 끝이다. 평균 10년 경력을 자랑하는 다른 간호사들은 1개 드레싱 세트를 포장하는데 10초 정도면 뚝딱 해냈지만, ‘초짜’에다 ‘손 큰 남자’인 나는 왜 이리 일이 더딘건지 일이 손에 익지 않았다. 처음 몇 개는 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이내 작업이 반복되면서 버벅대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불합격 판정을 받아 다른 간호사가 다시 포장하는 ‘민폐’를 끼쳤다.

맞은 편에서 같이 포장하던 정미연 간호사(42)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잘해봐요”라며 “힘들면 나가서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해도 괜찮아요”라며 능숙한 ‘밀당(밀고 당기는)’ 솜씨로 나를 이끌었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느낀 의문점은 이곳에서 일하는 28명의 간호사와 직원이 모두 여성이란 점이다. ‘요즘은 남자 간호사도 많고, 일반 병원 직원 중에는 남자 직원도 많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기대 이상의 답이 돌아왔다. “이전에는 남자 간호사나 직원들도 들어와서 같이 일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꼼꼼히 세척하고 포장해서 멸균 후 반출하는 이 세밀한 작업이 남자에게는 잘 안 맞나봐요. 덕분에 새로 단장한 이후 이곳을 찾은 남자는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그렇게 계속된 작업이 한 시간여 흐르는 동안 포장된 물품들은 바세린·오일류는 건열멸균기, 린넨·기구·세트류·캔류는 스팀멸균기, 내시경·호흡기 관련 장비·미세수술기구 등은 저온멸균기, 카메라·PVC 및 거울 부착기구는 E·O가스(Ethylene Oxide Gas) 멸균기로 나뉘어졌다.

특히 E·O가스는 열과 습기에 약한 제품 멸균에 사용되는 인체에 유해한 가스로 E·O가스 멸균실에는 일부 제한된 인원만 들어가 외부와 차단된 환경 속에서 멸균 작업이 이뤄진다는 말에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들어 저 것만은 시키지 말아줬으면 하고 기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의 유무를 알기 위해 정기적으로 멸균검사를 진행하고, 각 물품마다 포장재 겉에 표식지를 붙여 멸균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멸균실을 거쳐 이동한 곳은 중앙공급실의 ‘백미’인 청정구역이다. 이 곳에서는 멸균된 물품을 각 수술실과 병동으로 반출되기 전까지 보관하는 곳이다. 멸균된 물품은 종류에 따라 2주에서 최대 6개월까지 이 곳에서 보관되며, 물품별로 유효기간은 포장지에 별도로 부착돼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보관실은 그야말로 특수설계된 구역으로 온도는 24도 이하, 습도는 35%~60%, 시간당 10회 이상 환기가 이뤄지며 각 보관대도 천장, 바닥, 벽과 일정 간격 떨어져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수간호사의 지시로 멸균된 물품을 조심스레 보관대에 놓는 작업을 했다. 앞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멸균된 제품이 내 손 위에 놓이자, 이 물품이 곧바로 환자에게 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단순한 운반작업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수술 재료 반출실이었다. 이 곳에서는 수술 시 쓰이는 각종 도구를 수술실별 상황에 맞게 미리 포장해 별도의 가방으로 만들어준다. 이러한 수술재료 가방이 있음으로서 긴급 수술은 물론 하루 10건이 넘는 병원 내 각종 수술에 재빠르게 대처하고 수술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다음 날 수술을 집도할 정형외과에서 수술재료 주문서가 미리 들어온 탓에 다른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의학용 영어를 해석해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10여 가지 물품을 가져와 겨우 가방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수간호사는 “이렇게 과정별로 구역을 나눠 최첨단 과정을 진행하는 우리 병원의 중앙공급실은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라며 “우리가 없이는 모든 병원이 진료나 수술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막중한 각오로 ‘중앙’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중앙공급실 작업을 체험하면서 무엇보다 신기했던 점은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분업화돼 누가 소리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톱니바퀴 돌듯이 작업이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가운을 벗고 중앙공급실을 나오면 든 생각은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무엇보다 값지고 고귀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갖고 있던 허무맹랑한 생각 대신 안전하고 우수한 진료로 명성을 얻은 병원의 뒷편에는 이들이 흘린 땀과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에 병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박용준기자 yjunsa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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