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은 사회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간적접으로 알아보고자 했던 체험에 불과했다. 그 일을 직접 체험하고 느껴봤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체험 삶의 현장(?)은 앞으로 기자 생활을 이어가면서 쉽게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독특하고,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서 해보고 싶었다. 원양어선 체험, 제주도 해녀 체험 등 온갖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 문득 신문에서 하나의 기계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인천항에 접항한 배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거대한 기계, 바로 컨테이너(갠트리) 크레인이었다.
태어난 이후 줄곧 인천에서 자랐고, 인천항운노동조합 노동자들이 40여 년간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설립한 인항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인천항에서 해볼 수 있는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체험은 그 어떠한 일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수십m 상공에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극한의 체험을 기대했다.
컨테이너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진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객터미널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항만 자체가 보안시설로 구분돼 컨테이너터미널 입구부터 경비원의 경계가 삼엄했다. 다행히 인천항만공사와 ㈜선광 측에 미리 취재와 촬영 협조를 구해 간단한 신원확인 후 바로 출입증을 받을 수 있었다.
순조롭게 컨테이너터미널에 들어온 이후 ㈜선광 운영팀의 성호용 부장을 만나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의 체험 일정을 상의했다. 당장에라도 부두까지 뛰어나가 컨테이너 크레인에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입항 예정이던 선박의 엔진이 고장 나 하역작업이 연기된 탓에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크레인 기사의 휴게실이었다. ‘하역작업을 할 선박의 입항이 연기됐다면,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들도 배가 입항할 때까지 휴게실에서 쉬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들어갔다. 컨테이너 크레인을 이용한 하역작업은 작은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들의 휴식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휴게실에서 만난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김재천 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겨줬다. 김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략적인 컨테이너 크레인 구조와 운전할 때 주의점 등을 설명했다. 미리 인터넷을 이용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해뒀지만, 수박 겉핥기에 불과해 김씨의 설명 중 태반을 이해도 하지 못했다. 용어 대부분이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이다. 설명을 듣는 내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자, 김씨는 “차라리 직접 크레인을 보고, 하나둘씩 설명을 해드릴게요.”라며 “어차피 배 들어오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니, 미리 크레인에 올라가 봅시다.”라고 말했다. 드디어 수십 m 상공으로 올라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컨테이너 크레인이 설치된 부둣가까지 가는 길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외국으로 밀항하려는 조직폭력배와 이를 쫓는 열혈 강력계 형사의 멋진 액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나 컨테이너 숲을 지나자마자 등장한 컨테이너 크레인의 압도적인 모습에 사로잡혀 잡생각은 말끔히 지워졌다. 뉴스에서 매번 경상수지, 무역흑자·적자 등을 얘기하며 배경으로 나오던 컨테이너 크레인의 실제 규모는 크다 못해 웅장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올라간 뒤에는 운전실이 있는 캐빈(Cabin)까지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캐빈은 3평 정도의 규모로 생각보다 넓었다.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타워 크레인의 운전실은 기사 한두 명이 들어갈 정도지만, 컨테이너 크레인의 캐빈은 4명 이상이 들어가도 괜찮을 만큼 넉넉했다.
그러나 문제는 멀미였다. 컨테이너를 집어 올리는 스프레더(Spreader) 장치가 캐빈 아래로 연결돼 있어 운전석 아래는 땅바닥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로 돼 있었다. 순간 아찔함에 현기증과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앞만 본 채 애써 30m 이상을 올라왔더니, 땅바닥이 내려다보이는 운전석이 대신해 큰 두려움을 선사했다. 당장에라도 내려가고 싶었지만, 저 멀리 예선(예인선) 2대에 이끌려 입항하고 있는 7천t급 화물선박을 보면서 돌이키기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선의 힘으로 접항에 성공한 선박에 사람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정박부터 검역까지 모든 작업이 분업화돼 순식간에 진행됐고, 컨테이너 하역작업에 앞서 안전조회가 열렸다. 작은 사고에도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컨테이너 하역작업이기에 안전수칙을 다시 체크하는 안전조회는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였다.
안전조회가 끝난 뒤 컨테이너 크레인 위로 길게 뻗은 28m의 붐(Boom)을 선박 위로 천천히 내렸다. 캐빈과 스프레더가 앞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레인이 설치된 붐은 선박의 마스트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위를 향해 접어뒀다가 선박이 접항한 이후에 다시 내린다. 붐이 길게 수평을 그리자 캐빈과 스프레더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석 양쪽에 작은 레버를 조작해가며 컨테이너를 지상으로 옮겨갔다.
캐빈은 조작에 맞춰 수백 번 앞뒤, 좌우로 움직였고, 스프레더도 컨테이너를 집었다 놓았다 셀 수 없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작업이 세 시간째 이어지면서 멀미도 어느새 씻은 듯 사라졌고, 선박에 가득 쌓여 있던 컨테이너도 모두 지상으로 옮겨졌다. 풋내기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가 아무 사고 없이 일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작업을 끝내고 내려온 지상은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체험을 도와준 김씨는 작업이 끝났지만, 여전히 긴장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수년간 같은 작업을 해왔을 그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인듯했다. 그러나 절대 헛된 긴장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컨테이너 크레인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의 실수 여하에 따라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컨테이너터미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역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긴장으로 시작해 작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집중과 긴장감을 이어간다. 그들의 긴장은 오히려 일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건강한 기운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긴장하는 만큼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게 항만 노동자들”이라는 김씨의 말을 계속 되새겨 본다.
김민기자 suein84@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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