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그리운 달동네… 따르릉~ 따르릉~ 행복 배달왔어요
몇통 몇반 작은 글씨는 돋보기 넘어 희뿌연 풍경
한참후 난 대문앞에 놓여있던 아저씨 모자 눌러 쓰고서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빨간 자전거 타는 아저씨
장필순의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를 듣다보면 어느새 내 머리 속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빨간 자전거를 타고 편지와 소포를 전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떠오른다.
해맑게 웃는 ‘볼 빨간’ 아이들과 인자한 주름 미소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까지…. 모두들 우체부 아저씨가 꺼내든, 설레임 가득한 편지를 받아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다.
우리 마음 속에 우체부 아저씨는 그런 기억이다.
수줍었던 어린 시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이름 모를 소녀의 펜팔 편지와 군 이등병 시절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 편지까지.
우체부 아저씨는 매일 그렇게 우리에게 설레임을 선물하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설레임 가득했던 그 때 그 편지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에 밀려 설 곳을 잃었지만 여전히 우체부 아저씨는 고마운 사람이다.
경인지방우정청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잊혀진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365봉사단을 운용, 외롭고 지친, 사람 냄새 그리워 하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우체부 아저씨의 방문을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우체국 내부에서는 하루 일과 준비에 모두들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활기 넘치는 수산시장을 보는 듯 한 모습이랄까.
부천우편집중국을 통해 인천 계양구로 날아온 하루 수십만통의 소포와 등기 등의 우편물을 소화하기에 다들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최승범 계양우체국 집배실장(46)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우편물량이 많이 늘었지만 설이나 추석 명절에 비하면 이정도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 업무할 지역은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 효성동 달동네라 몸이 좀 고생할 듯 싶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오늘 기자, 아니 수습 집배원이라는 ‘짐’까지 떠앉게 된 베테랑 엄상영 집배원(53)은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하겠어요. 젊은 친구가 고생한다고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주지 않을까요”라고 웃음 지었다.
엄 집배원을 따라 계양우체국 2층에 자리한 순로구분기실에서 동별, 지역별로 구분된 우편물을 한아름 받아들었다.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에 우편물을 싣고 엄 집배원의 책상으로 향했다.
엄 집배원과 함께 다시 우편물을 꺼내들고 동네 별로 구분, 오늘 배달 동선을 정하고 이를 차곡차곡 다시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 안에 담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는 수습 집배원의 말에 최 집배실장은 “집배원이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다시 우체국에 들어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 때문에 각 구역별로 거점을 정해두고 우체국에서 집배원이 더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을 트럭에 실어 가져다 놓는다”고 설명했다.
동네 우체국(우편취급국 등)이나 약국, 슈퍼마켓 등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작은 양의 우편물에 내심 기뻐했던 것도 잠시였던 것.
1층으로 내려가 빨간 자전거, 아니 빨간 이륜자동차에 우편물을 옮겨 담고 효성동을 향해 출발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계양산 줄기 밑에 자리한 허름한 2동짜리 아파트였다.
출입구 앞에 이륜자동차를 세우고 1층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각 가정 우편함에 일반 우편물을 꽂고 돌아서려 하자 임 집배원은 “등기와 소포는 집에 올라가서 직접 전달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15층으로 올라가 1개층씩 계단으로 내려오며 등기와 소포를 전했다.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어 다시 1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주머니에서 노란색 스티커를 꺼낸 임 집배원은 ‘택배’, ‘등기’, ‘경비실’이라는 글자 등을 적어 각 가정 우편함에 정성스레 꽂아두었다.
“아파트와 달리 효성동 달동네를 올라가면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라는 임 집배원을 따라 구불구불한 언덕길로 향했다.
45도 이상되는 경사에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서자 산줄기 중턱 양 옆으로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각 집들에는 빨간색 글씨로 ’14’, ’37’이라는 등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7년전 재개발이 예정됐던 지지부진하면서 모두 30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던 달동네는 현재 50가구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빨간색 숫자는 빈집 번호를 뜻한다고 했다. 빈집들은 창문을 하얀색으로 칠한 나무 판대기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곰인지, 개인지 모를 커다란 개가 짖기 시작했다.
임 집배원은 “오만이가 원래 짖지 않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경계하나보다”라고 말했다.
개, 아니 강아지 이름은 오만이. 엄청난 크기와 달리 이제 2살된 진돗개다. 몸이 불편한 안기석씨(74) 댁을 지키는 늠름한 놈이었다.
오만이가 짖는 소리를 듣고 안씨가 문을 열었다. 몸이 불편한 안씨는 집 안에서 임 집배원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식사는 잘 하시는거죠?”
임 집배원의 말에 안씨는 밝게 웃으며 여기저기 아픈 곳과 식사는 무엇을 했는지 등 아들이 찾아온 것처럼 ‘수다쟁이’가 돼 버렸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안씨가 “날씨가 좋아 산책도 하고 싶은데 몸이 불편해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자 임 집배원은 “창문이라도 시원하게 열어두세요. 조금씩 걷는 연습해야 좋아져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허름한 집에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둘이 살고 있는 김씨는 나이 탓인지 시력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고물을 주어 생활하는 김씨 역시 임 집배원을 보고 반갑운 인사를 전하며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예전처럼 설레임과 반가움 가득한 손편지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이들을 찾는 집배원의 말 한마디는 봄햇살 만큼이나 따스했다.
임 집배원은 “집배원 만큼 동네 사람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우편물만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주민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안씨와 김씨, 그리고 달동네 주민들은 임 집배원을 통해 365봉사단에 추천, 지난 겨울 연탄과 김치 등 생필품은 물론이고 새롭게 수많은 아들과 딸을 선물받았다.
임 집배원은 “어버이날 홀몸 어른신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때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 연탄을 날라주는 모습에 ‘고맙우이’라는 연방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마음이 더 위안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임 집배원을 따라 제때 점심식사도 하지 못한 채 2천여통의 우편물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최 집배실장의 말처럼 땀을 비오듯 흘리며 그동안의 운동부족을 여실히 느껴야 했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했다.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건네줬던 달동네 어느 아줌마의 온정 만큼이나 말이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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