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위기의 부부’, 갈등치유 통해 화해의 길로…
사실 평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드라마의 열렬한 팬으로서, 실제 저런 사연이 있을까? 저런 사연을 접하면 어떻게 대처하고 도와줘야 하는 건가? 라는 궁금증이 가장 컸다.
마침 최근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 가족 전문상담소인 ‘가족애(愛)돌봄나눔터’가 개소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곧장 평소 친분이 있던 김양희 경기도여성비전센터 소장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부부는 ‘싸움 내용’이 아닌 ‘싸움 방식’ 때문에 이혼한다
지난 20일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경기도여성비전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지난해 ‘가족애(愛)돌봄나눔터’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상명대학교 상명가족아동상담교육센터에 위탁해 보다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애돌봄나눔터는 가족상담실, 놀이치료실, 집단상담실 등을 갖추고 전문상담사들이 주중뿐 아니라 주말까지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 및 이혼위기 부부를 위한 전문 상담과 의사소통 및 부부갈등 치유 집단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직업체험을 도와주신, 직업멘토가 되어주신 선생님은 상명가족아동상담교육센터 소속으로 가족애돌봄나눔터 상담실장을 역임하고 있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상담사 방경미 선생님이다.
방 실장님은 먼저 상담사로서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알려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이라고 말해주었다. 상담하기 위해 찾아온 부부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해 줘야 그들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것이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6회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1회차에는 대부분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해 줬다.
가족애돌봄나눔터는 앞으로 약 5개월가량 예약 일정이 꽉 잡혀 있다고 한다. 내가 방 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 방에서는 상담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남편과 아내가 큰 소리를 지르며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다. 옆방을 걱정하는 나를 보고 방 실장님은 저렇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놔야 심리치료가 가능하다며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 실장님은 남녀가 말싸움하게 되면 흥분상태가 되고 화가 치솟는 일명 ‘감정의 홍수상태’가 되면 사람의 뇌가 파충류의 뇌가 되어 ‘공격’과 ‘도망’이라는 2가지 패턴이 나타나게 돼 참을 수 없어 큰 싸움이 되거나 집을 나가버리게 된다고 설명해 줬다.
실제로 싸우는 남녀를 보면 한 명은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도망가려고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말하다 말고 어디 가냐”고 따지는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방 실장님은 대부분의 부부가 ‘싸움 내용’이 아닌 ‘싸움 방식’ 때문에 이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녀문제, 경제문제, 시댁문제, 외도문제 등 본질적 사건이 있어 싸움이 발생하지만 싸움이 비난에서 모욕, 모욕에서 경멸, 경멸에서 회피 등으로 번지면서 이혼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상담소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부부가 5~7년차 부부들인데, 이는 1~2년 정도는 서로 좋다가 점점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을 2~3년 참다가 결국 5년차 이상이 되면 폭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부부간의 대화와 대화를 통한 이해와 화해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늘 내가 상담사 체험을 하게 된 부부는 결혼 3년차 부부로 남편과 아내 모두 30대 후반의 나이였다. 부부 사이에는 100일 된 아이가 있었고 두 사람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 이런 곳에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전문 상담사가 아닌 내가 심각한 위기 상황의 부부에게 상담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방 실장님과 상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체험을 대신하기로 했다.
상담을 하러 온 부부들은 자신의 성향과 대화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MBTI(성격유형검사) 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마친 부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아내는 평소 분노를 잘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데 가출로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아내가 2번이나 가출을 했으며, 그럴 때 마다 자신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는 것이다. 아내와 주로 싸우게 되는 이유는 처가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임을 갖는데 그때마다 처가식구들에게 무시와 비교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편이 지방 사람인데, 처가 식구들은 지역감정도 드러내 남편의 맘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아내도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결혼전 남편은 심장 수술을 받아 몸이 건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부모들이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측은지심으로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 강행하게 됐다. 이후 아내는 몸이 아픈 남편을 보면서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몸이 아파서인지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가는 남편을 보면서 속상했다고 한다. 또 남편과 다툴 때면 아픈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 같은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이 부부에게 방 실장님은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며 아내에게 처가로부터 기대는 것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부부가 건강할 수 있으려면 함께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설명해줬다.
부부가 돌아간 뒤 나는 방 실장님에게 “저 부부가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방 실장님은 “다음 상담에서는 부부간 감정 고리를 끊고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며 “분명히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극적인 상황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체험을 마치면서 나는 방 실장님께 “실장님은 부부싸움 안 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방 실장님은 “부부싸움은 모든 부부가 다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보통 부부들은 싸우고 끝내지만, 우리 부부는 싸우고 난 후 꼭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싸우다 감정이 격해지면 20분 정도 시간을 갖고 감정을 추스른 후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며 “대화의 주어를 ‘나’로 한번 해봐라. ‘나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공격적인 말투가 나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방 실장님께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이에 방 실장님은 “싸움을 잘하는 것은 화해를 잘하는 것”이라며 “상대방의 욕구를 먼저 해소해 줄 때 화해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이날 체험을 하면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나조차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다. 혹시 지금 부부관계에 있어 고민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면 무료이고,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 프로그램도 있으니 이혼을 위해 법원을 가기 전 ‘가족애돌봄나눔터’를 꼭 한번 들려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 방경미 상담실장의 ‘부부 갈등 완화를 위한 말하기 태도 Tip’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개방하면서 말한다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투로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 인격을 비하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을 들추지 않고 현재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만 말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잘못을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항상 옳고 중요하다는 태도나 피해자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호준기자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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