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채취는 물때와의 싸움… 쉴틈없는 작업에 허벅지ㆍ허리 ‘뻐근’
지난 22일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바지락 채취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화성시 고온리 일대 어장을 찾았다.
고온리 일대 어민 70여명과 함께 어선을 타고 나간 바지락 어장에서의 3시간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어민들은 바닷물이 다시 차오르기까지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잠깐 휴식은 물론 잡담 한마디 조차 없이 바지락 채취 작업에 몰두했다.
치열한 어민들의 모습을 보며 ‘농땡이’를 칠 수 없었던 기자 역시 갯벌 이곳저곳을 누비며 열심히 바지락을 캔 탓에 체험을 마친 뒤 며칠간 허벅지에 뻐근함을 느껴야 했다. 짭쪼롬한 바다 내음 가득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바지락 어장을 향해 출발
지난 22일 오전 9시30분께 바지락 채취 1일 체험을 위해 경기남부수협 직원 2명과 함께 화성시 고온리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1시간 여를 달려 고온리 선착장에 도착하자 고온리에서 나고 자란 ‘바다 사나이’ 김종열 경기남부수협 지도과 과장이 준비한 밀집모자와 땀을 닦기 위한 수건, 썬크림을 건넸다.
모자와 수건을 건네 받은 뒤 썬크림은 됐다고 사양하자 김 과장은 “아휴, 박기자 님 여기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갯벌 바닥에 반사된 해가 얼마나 뜨거운데요. 얼굴 새까맣게 다 탑니다. 사양말고 빨리 듬뿍 바르세요”라며 은근히 겁을 준다. 그제서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얼굴에 썬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선착장에서 탁트인 바다 바람을 맞으며 물때가 오기를 기다린지 20여분이 지나자 썬캡과 스카프, 긴 고무장화로 로 무장한 어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바지락 채취 어장을 위해 출발.
예닐곱대 정도의 어선에 나눠탄 뒤 배가 출발하자 상쾌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날 기자와 함께 한 배에 탄 어민들은 평균 연령 60대가 훌쩍 넘는 지긋한 연령의 아낙들이 대부분. 군대에 간 손자를 둔 80대 할머니도 있었다.
아낙들 대부분이 항해하는 동안 머리를 대고 누워 쪽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리자 배가 바다 한 가운데 멈춰섰다.
물이 빠져 갯벌이 바닥을 드러내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자 본격적인 채취 작업을 위해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할 선상위에 식사 시간이다.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묵은 김치와 숭어조림, 멸치, 꼴뚜기 등 해산물로 만든 밑반찬들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여기에 라면과 소주 한잔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아침도 거르고 온 기자가 밥과 라면을 뚝딱 비워대자 아주머니들은 ‘배위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죠?’라고 밥을 듬뿍 더 얹어준다. 역시 넉넉한 시골 인심이다.
▲ 바지락 채취는 물때와의 싸움
식사를 마친 뒤 어민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다보니 어느새 그 많던 바다물이 다 빠지고 갯벌 바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채취작업 시작. 본격적인 바지락 채취가 시작되자 여유로워 보이던 어민들의 표정은 금세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바닷물이 차오르기까지 고작해야 3시간 밖에 없는 만큼 바지락을 하나라도 더 캐야하기 때문이라는 문전호 고온리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바지락 채취는 물때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민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셈이다. 결국, 김종구 수협 지도과 과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본격적인 바지락 채취를 시작했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호미로 갯벌을 파 표면 5~10㎝ 가량에 사는 바지락을 주워담으면 되는 작업.어민들이 캐는 것 만큼 바지락을 채취해 집에 계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야무진 일념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요령은 단순했지만 역시 말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갯벌을 헤집어놓는데는 뒤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바지락 채취량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콩알만한 크기의 바지락 숨구멍이 있는 곳을 집중 공략하는게 요령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다시 열심히 갯벌을 파헤쳐 봤지만 생각만큼 많은 바지락을 채취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어민들은 반면 베테랑 어민들은 능숙한 손동작으로 갯벌을 긁어낸 뒤 바지락을 바닷물에 띄워 퍼담아내고 있었다. 작업전에 했던 야무진 결심이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갯벌 이곳저곳을 오가며 쪼그려 앉아 갯벌을 파다보니 어느덧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민들의 채취 방법 흉내내기를 반복하는 동안 요령을 터득해서인지 채취되는 바지락 양은 처음보다 훨씬 늘었지만 허벅지와 허리에 뻐근함이 느껴지면서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작업 초반의 진지함을 잃지 않은 채 채취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은 물론 일체의 잡담조차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치열한 어민들의 모습에 농땡이를 칠 수 없다고 느끼며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아휴, 비교적 널널한 체험도 많은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 바지락이 식탁위에 오르기까지
3시간에 걸친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 끝나자 저 멀리서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작업을 마무리할 시간. 상품성이 없는 작은 바지락을 골라내기 위한 선별 작업을 마무리한 뒤 배에 올랐다. 이날 채취한 바지락 양은 어민 1명 평균 60kg 가량.
반면, 요령을 피우는 일 없이 최선을 다한 기자가 채취한 양은 10kg에 불과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던 찰나 ‘어휴, 처음치고는 정말 많이 캤는데요?, 진짜 열심히 했나봐요’라며 김종열 과장이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문전호 고온리 어촌계장으로부터 어민들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문 계장은 최근 해양 생태계 변화로 바지락 양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걱정을 털어놨다. 불과 3~5년전까지만 해도 바지락 채취양이 현재의 두배 가량에 달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어민들의 고충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갔다. 또 바지락 풍년이 연이었던 경기 지역 9개 어촌계 중 현재까지도 정상 조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고온리가 유일하다는 말을 들으니 개발로 인한 환경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3시간에 걸친 작업을 마친 뒤 몸은 짠 바다내음, 땀, 피로감으로 잔뜩 무거워져 있었지만 손에는 직접 채취한 바지락 자루가 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바지락 자루를 어머니께 건네니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다. 모처럼만에 효자 노릇을 한 것 같아 뿌듯함이 밀려온다.
1일간의 ‘해감’(바지락을 바닷물에 담가 갯벌 등 불순물을 토해내게 하는 과정)을 거쳐 삭탁 위에 올라온 바지락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시원한 바지락 국물을 마시며 해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하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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