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한자루의 칼이 남아있사옵니다…
꼬리와 대가리, 지느러미를 무참히 내동댕이칠 때도 말이다. ‘어찌 저리 무심한 표정으로 생선들을 난도질할 수 있지? 생선아 미안해, 내가 저 아줌마 혼내줄게.’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한 뒤, 집에 돌아와선 그 생선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철이 조금 든 후 생선가게를 지날 땐 왠지 모를 삶의 강인함을 느낀다. 생을 연장하려고 펄떡펄떡 뛰는 생선들의 요동과 비릿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상인들. 삶을 위한 땀이 비린내와 뒤섞이고, 손님들의 삶 이야기가 오고 가는 복잡다단한 공간, 날 것 그대로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다.
무더위가 아직 꺾이지가 않은 지난 11일 그 비릿한 땀의 현장을 느껴보고자 수원 미나리광시장의 1일 생선가게 상인이 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매출도 확 올려보리라는 자신감도 안았다. 그런데 웬걸, 상인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시장의 아침은 분주했다.
오전 8시, 수원 미나리광 시장 지동수산의 유수일(68)ㆍ김춘자(60)부부는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이미 오전 6시 반부터 나와 준비를 하고 있던 두 부부는 기자를 향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이렇게 해서 장사하겠느냐’고 웃으며 호통을 쳤다.
생선장사만 25년째라는 두 부부는 이곳에서 지동수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14년간 생선가게를 운영 중이다.
“아이고, 힘들 건데 아가씨가 할 수 있겠어? 나중에 도망가지 마.” 김씨가 하얀 장갑과 앞치마를 건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앞치마를 입고, 장화를 신으니 생선가게 상인으로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손님을 맞으려면 생선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게 우선이다. 먼저 생선 바구니에 얼음을 올려놓는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선도를 유지해 주는 얼음이다. 특히 전통시장에 대한 손님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더욱 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가판대를 늘 가지런히 정리하지만, 대형마트의 깔끔함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김 씨는 “우리도 손님들에게 좋은 상품을 멋지게 진열하고 싶은데, 전통시장은 여건이 안된다”면서 “가판대도 정리하고 위생시설, 냉동시설도 잘 갖춰질 수 있도록 지원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생선이 담길 얼음 바구니가 완성되자 파란 비닐을 깔고,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했다. 정리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제아무리 생선일지라도 예뻐 보여야 손님들의 간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열된 생선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오징어, 갈치, 이면수, 명태, 가자미, 열기, 새우, 낙지, 오징어, 바지락, 맛살 등 목포바다에서 잡혀온 생선부터 저 멀리 러시아 해역 태생까지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해산물과 생선 30여 종이 한데 모였다.
장사를 하려면 우선 이들의 이름부터 외워야 했다. 평소 생선을 좋아하던 터라 이름 외우기에는 자신 있었지만, 비슷한 종류가 한데 모여 있어 도무지 뭐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버벅거리며 생선과 수산물 30여 종류를 진열하고 이름과 가격을 외우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오전 9시까지 팔린 금액은 6만 원치다. 이 정도면 첫 장사치곤 나쁘지 않은 성적이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김씨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래 오전 6시20분에 문 열자마자 첫 손님이 와. 아니면 그날 장사는 공 치는 거야. 오늘은 기자 이모 오고 나서 첫 손님이 왔네.” 부진한 출발, 심기일전하고 상인의 자세로 돌아갔다.
“뭘 좀 드릴까요?”, “싱싱한 게 맛있어요. 지금 이모가 보시는 거 싱싱해. 싸게 드릴게요.” 김씨 부부를 따라 손님이 오면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붙여봤지만, 쉽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표정과 20대부터 70~80대까지의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다정다감한 말투, 이 모든 것을 구현해 내야 하는 게 상인이다. “우리 어머니 뭘 좀 드릴까?” 능숙한 척 연기하는 찰나, 손님의 아찔한 말이 돌아왔다. “고등어 시원하게 배 갈라서 내장은 쫙 빼고 대가리는 몇 개 넣어주세요. 찌개 끓여 먹게.”
머뭇거리는 기자를 대신해 전면에 나선 김씨의 칼은 쉴 틈이 없었다. 그녀가 팔을 크게 휘두를 때마다 도마 위에 놓인 생선들은 속절없이 분해됐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분해된 그것들은 통에 한가득 쌓여 갔다. 다시 어릴 적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생선가게 아주머니들이 생각났다.
“사장님은 원래 이렇게 생선 토막을 잘 내셨어요? ” 어리석은 물음에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원래 잘하진 않았지.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생선 대가리도 쾅쾅 내리치게 됐어. 나도 옛날엔 우리 기자님처럼 이런 거 무서웠어. 그래도 이걸로 자식 3명 대학 다보내고, 집도 장만했어.”
매일 생선을 팔며 사투를 벌이는 김씨는 여전히 생선이 좋다고 한다. 식사 때도 늘 생선이 빠지지 않는다. 이들 부부에게 생선은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쉽게 생각했지만, 일은 끊이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고, 손님이 없을 땐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냉동고에서 꺼내놓고 가다듬고, 잠깐 짬나면 손님이 주문한 물품을 손질해놓는다. 빨래와 청소도 이따금 이어진다. 하루에도 물건은 수차례 들어온다.
싱싱한 제품을 팔려고 그날 예상되는 판매량만큼만 제품을 들여놓다 보니 잔일도 많았다. 물건이 조금씩 들어오면 장부를 정리하고 냉동고에 넣고, 정리하기 바빴다. 원산지 확인도 빼놓을 수 없다. 바쁘게 움직이던 찰나, 정오가 되니 손님의 행렬이 끊겼다.
후한 인심 덕에 인근 시장에서도 손님 많기로 유명한 지동수산인터라 신경이 쓰였다. “손님이 없네요.”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내뱉자 김씨의 호탕한 말이 돌아왔다.
“에이,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장사 못해. 신경병 걸려. 장사는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있다가도 손님이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 그저 손님 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맞이하면 돼.”
특히 4월부터 8월 중순까지 전통시장은 비수기다. 요즘엔 세월호 사건과 경기침체로 더욱 힘든 여름을 보낸다. 이 날도 매출은 50여만 원에 그쳤다. 하루에 들어가는 얼음 값과 재룟값을 빼니 적자였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꽤 장사가 잘됐다. 학교, 은행, 공공기관 등의 식당에 납품하면서 큰 고객들을 확보했지만, 유통업이 급식시장을 장악하면서 현재는 인근 식당이나, 농ㆍ수협 등에 납품하는 게 전부다.
손님의 발길은 잠시 뜸해도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시장 내에 있는 냉커피 아줌마가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을 건네고 가고, 납품업자들이 수시로 들러 물건을 내려놓는다. 인근 식당에서 물건 좀 달라며 다녀가기도 했다.
만남과 만남이 이어지는 사이 일상의 대화가 잔잔하게 오갔다. 기자를 비롯해 상인들의 고단함은 절로 풀어졌다.
상인의 자세는 뭐냐고 묻는 기자에게 유씨가 말했다. 첫 번째는 상품이 좋아야 하고, 두 번째는 고객에게 친절, 세 번째는 항상 ‘상인’의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 자세를 익히며 나름 생선칼을 좀 휘둘러봤던 상인으로서의 하루는 오후 4시를 넘어서며끝을 냈다. 옷에 밴 비린내를 훌훌 털어내자 더 진한 냄새가 묻어났다.
무수히 많은 손님을 만나며 일상의 대화를 나눴던 정과 치열한 삶의 냄새 말이다. 이제는 생선가게 아줌마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손님이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강인한 여인들이었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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