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생각한 조립… 막상 해보니 만만치 않더라
이제 막 문장을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한 아들놈이 불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가로등, 차량전조등까지 밝은 것만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불, 불 켜졌어”하고 말하곤 한다.
이날 저녁에도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소파 위로 기어올라 전등 스위치를 연신 껐다 켰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마세요” 하고 아이를 제지하며 천장을 바라보다 뇌리에 전구가 탁 켜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저거야!’ 어둠을 밝혀주는 전등. 전등공장에서 제조 공정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아이템이 정해지자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다음날 곧바로 시청의 담당 직원을 만나 광주시내 전등 생산업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해 LED전등 전문 생산업체인 ‘썬래이’를 찾아냈다. 곧바로 이승기(57)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다. 이 사장은 흔쾌히 허락해줬지만, 막상 일정이 잡히니 한편으로는 미지의 일에 대한 두려움도 슬슬 피어올랐다.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청년 구직난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시점에서 이번 체험기사가 중소기업은 물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용기를 줬다.
생산직 체험을 약속한 지난 22일 아침, 평소보다 30분 빨리 집을 나섰다. 전날까지도 비를 뿌리던 궂은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듯 쾌청하게 갰다. 성남 분당에서 3번국도를 1시간30분 정도 달려 차 한대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진입로를 지나 광주시 곤지암읍 ‘썬래이’에 도착했다.
썬래이는 SED특허(낙뢰로 단축되는 전등의 수명을 연장하고 전자파를 감소시키는 기술)를 가지고 일반 전등보다 약 40~70% 이상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LED등 수십가지를 생산하는 국내 LED등 시장 선도업체다. LED등은 얼마 전만 해도 일반 등보다 가격이 유난히 비싸 가정보다는 관공서나, 대형상가, 기업체사무실, 공장에서 주로 사용돼 왔으나, 최근에는 단가가 많이 낮아져 가정용 제품도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다.
카드키 시스템으로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 진입로를 지나 사무실에서 신분을 밝히자 전상모(42) 연구소장이 반갑게 맞이하며 공장견학을 권했다. 전 소장을 따라 작업장에 들어서자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시끄러운 기계음과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를 예상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생산라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 소장은 “LED등은 한 공장에서 전 공정이 이뤄지기는 쉽지않다”며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해 설계와 디자인, 회로도 등을 각 부품별로 외주업체에 발주하고, 외주업체에서 생산한 각 부품을 조립해 제품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작업장은 LED전등의 깜박임을 수 시간에서 수십시간에 걸쳐 테스트하는 에이징기와 항온 항습기, 암실, 수치 측정실 등 각종 기계가 설치돼 있고, 중앙으로는 제품 조립과 포장을 하는 작업대가 자리잡고 있다. 작업이 용이하도록 ‘ㄷ’자 형태로 놓인 생산라인은 자재 창고로 이어진다.
번갯불에 콩 볶듯 10여분에 걸친 공장 전반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전 소장은 곧이어 현장관리와 자제발주 책임을 맡고 있는 이웅노(43) 부장을 소개했다. 그날만큼은 이 부장이 직속상관이었다.
15년째 조명 제조업에 종사하며 완제품 출고장과 자재 창고를 관리하고 있는 이 부장은 현장 애로사항을 묻자 “한여름에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운 줄 모르고 겨울 역시 난방이 잘 돼 있어서 작업 환경은 좋다”며 “하지만 굉장히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이직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장은 “이왕에 오셨으니 제조업 현실을 제대로 경험하고 가셔야죠”라며 10여명의 직원들이 작업을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처음 주어진 임무는 천장 매립형 ‘평판매입 LED전등’ 완제품 조립이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고 사회경험을 쌓고 싶어 일을 배우는 중이라는 김태성씨(24)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바로 옆에서 작업에 참여했다.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평판 케이스 앞면에는 LED칩이 박혀있는 4개의 PCB판을 24개의 고정볼트로 고정하면 된다. 이어 케이스 뒷면에는 라벨지를 붙이고 하네스선을 꼽은 후 PCB모듈과 컨버터, SED(썬래이 특허)를 평판에 부착, 앞면의 PCB판과 선을 연결하면 되는 작업이다.
글로 풀어 설명하니 복잡하지만, 막상 쉽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 건전지 갈아끼우는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고 전동 드릴을 청했다. 평판 케이스 위에 4개의 LED칩을 올려 놓고 전동드릴을 돌렸는데 볼트가 생각처럼 잘 들어가지 않고 헛돌았다. 지켜보던 김씨가 “너무 힘이 많이 실리면 PCB판이 손상 될 수 있으니 적정한 세기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무바킹을 고정하고 PCB모듈과 컨버터, SED(썬래이 특허)를 평판에 부착, 선을 연결하고 모듈케이스와 확산판커버를 조립해 첫 작품을 완성했다. 이제 한개를 만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다리가 저려오고 목이 뻣뻣해졌다. 김씨는 “작업과정은 단순하지만 어느 것 하나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웃었다.
제품의 조립이 끝나자 전력 조정 및 내전압시험이 진행됐다. 미리 설정값을 정해놓은 장비에 전력을 연결, 설정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합격이다. 각 공정에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완제품 전 마지막 공정에서 기겁을 했다. 전력이 연결되자 PCB칩에서 엄청난 빛이 발산됐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전원을 넣은 상태에서 마지막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다 혼이 난것이다.
조립에 대한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는 완제품을 포장하는 작업이 돌아왔다. 늘상 마트에서 장 본 물건을 박스에 담는 일이 숙달된 것만 믿고 쉽게 달려들었다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혼나고 말았다. 박스 바닥면을 가지런히 하고 테이핑을 하는데, 삐뚤어지게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떼면 박스 표면이 일어나 불량이 돼버리니 여기서 신중함이 필요했다. 미리 출고가 예정돼 있는 제품 600개에 대한 박스 작업을 마무리하고 완제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조립을 마친 제품은 한 개에 박스에 평판 LED등 2개가 들어간다. 먼저 박스 바닥에 발포지를 깔고 그 위에 제품을 넣고, 다시 발포지를 깔고 제품을 넣고 테이핑을 하면 끝이다. 포장이 마무리된 제품은 미리 준비해 놓은 파렛트에 차곡차곡 쌓아 지게차를 이용해 차량으로 옮긴다.
■ 중소기업 옥죄는 인증제도 등 개선 시급
완제품을 차량에 싣는 작업을 끝낼 때쯤 이승기 사장이 “현장을 보셨으니 내부도 보셔야죠”라며 2층 회의실로 이끌었다. 회의실에는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전현수(54·여) 대표가 회계와 영업담당 이혁준(32) 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묻자 이 사장은 “조명관련 제조업 공장들은 인천이나 부천 쪽에 많이 몰려 있어 인력 수급이 용이한 편이지만 광주는 관련 인력 모집도 힘들다”면서 “갈수록 현장일을 기피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작업 환경이나 근로여건은 중요치 않다. 대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은 급여에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각종 복지를 보장해 줘도 주위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사회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공장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간혹 눈에 띄었다. 이마저도 이직이 잦아 항상 직원고용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 “아직까지는 대기업이 이쪽 시장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이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냐”며 “지금도 LED칩 생산은 LG나 필립스 등 대기업들이 생산을 전담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일반등에 적용하는 기준에 수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새로운 인증을 받게 하는 제도 역시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6개월에 한번씩 신제품이 출시되는데도 새로운 인증을 받으려면 수개월씩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밀려드는 저가 중국산 LED등으로부터 국내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고 LED등의 국내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체험은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변화로 대기업처럼 인력 걱정 없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자신들의 꿈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광주=한상훈기자
사진=추상철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