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름다워 더 슬픈 노인
호주 청년극단 성남 초청 국내 초연작
빈틈없는 구성·동화적 상상력 극대화
호주의 청년 공연 그룹인 ‘The Last Great Hunt’의 연극 <밖은 지금 어두워요_It’s Dark Outside>에 대한 현지 인터넷 신문의 비평 중 일부다.
이 작품은 치매를 앓는 사람 중 일부에게서 나타나는 ‘일몰증후군(Sundowning Syndrome)’이 소재다. 해 질 무렵이나 저녁에 아무 이유없이 혼란과 초조함을 느끼며 급기야 안온한 공간을 떠나 밖으로 나가서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대표적 증상이다.
지난 21일 성남아트센터에서의 국내 초연을 관람한 후, 국적이 다른 기자의 리뷰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덧붙이자면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이어서 더 슬픈 한 편의 시이자 동화, 미술작품, 그리고 교향곡이었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떠올릴 만큼 50여 분 동안 펼쳐진 무대는 마음을 파고드는 음악과 서정성이 풍부한 장면까지 빈 틈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 모자를 쓴 한 노인은 집 안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컵과 테이블, 의자 등에 당혹스러워한다. 이 때 등장한 수배전단. 그 수배자는 노인의 얼굴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노인은 수배자를 찾아 집 밖으로 나선다.
살아있는 텐트(움직이는 말)와 함께 으스스한 나무 숲을 지나고, 선인장만 가득한 사막을 걷고, 전쟁터 한 가운데 서 있고, 행복한 꿈을 꾸는 등의 여정을 쫓는다. 매 장면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마임ㆍ애니메이션ㆍ인형극ㆍ그림자극ㆍ상징적인 오브제ㆍ음악, 조명 등 촘촘했다. 이 중 주요 오브제로 기억(그것은 곧 노인 그 자체)을 상징하는 솜뭉치는 순간 잔망스러운 강아지였다가 하늘 위로 오르는 구름 계단이 되는 등 동화적 상상력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대사 없이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공연단은 국경 상관없이 보편적 감성을 일깨우는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평균 연령 31세인 3명의 제작자 겸 배우들은 소멸되어가는 노인을 담담하게 연기,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삶에 대한 통찰과 노인에 대한 깊이 있는 관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치매의 날(10월21일)을 맞아 일몰증후군을 소재로 한 연극으로만 부각된 것이 아쉬울 정도다.
실제로 이날 공연 후 출연진과 가진 리셉션에서 정은숙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역시 “치매 소재 공연으로만 알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으로 다양한 감상평과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 슬픈 이 예술작품은 2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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